“당진땅 구석구석 눈감아도 보입니다”

길 위에서 길따라 30년 , 당진여객 모범운전자 김길성씨

토요일 아침의 당진버스 터미널, 시내버스 한대가 면천을 향해 막 떠날 참이었다. 버스기사 김길성(50세)씨가 경유지 푯말을 앞유리에 꽂자 주변에서 서성대던 사람들이 버스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래봐야 승객은 몇명 되지 않는다.

그나마 그중 한 승객은 양손에 짐보따리를 잔뜩 들고 차비 없는 버스를 탄다.

“안녕허슈?”

“어휴, 오늘은 장보니라 돈이 음써서 외상으루 타야겄구먼.”

“그류? 그럭허슈. 담에 주슈.”

그래도 믿거니 하고 웃는 낯으로 지나치는 두사람.

버스는 읍내를 벗어나더니 신성대 정문을 들어갔다 다시 나간다.

한적한 토요일의 학교교정은 적막할 지경이다.

“신성대가 지역에 꽤 도움이 되죠?”

김 기사님의 말씀이다.

“10년 전만 해도 학생들 통학시간이면 버스가 꽉꽉 들어차서 몇명씩은 떼어놓고 다니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시간에도 별로 학생들을 볼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우선 시골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가 어렵고 지가용이나 셔틀버스가 늘어나 시내버스는 승객 대신 썰렁함을 싣고 다닐 때가 많다. 듣고보니 요즘은 대학생들이 만만찮은 버스승객인 모양이다.

구룡리를 지나 승전목에 이르렀다. 면천은 역시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어깨의 절반을 도려낸 승전목은 아침햇살에 더 아파 보였다. 기사님도 이런 느낌에 동의하신다.

조용하고 한적하며 작은 언덕들이 굽이치는 시골마을이 펼쳐졌다.

삼웅리 쯤 왔을까. 버스가 지나는 작은 언덕 하나를 기사님이 턱끝으로 가리켰다.

“저기가 송영진 의원 댁이요.”

“그렇군요. 이런 시골에서 인물 났다고 몰표가 나왔을 만도 하네요.”

“인물요? 요새 같아서는 어디 가서 당진 산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기사님은 요즘 국정감사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욕설파문을 떠올리며 정치에 대한 의견 몇 말씀을 더 보태신다.

다음 정거장에서는 할머니 두분이 올라오셨다.

“에고, 6백원에 30원뿐일세. 기사양반, 워쩐댜?”

차비에서 몇십원이 부족했었나보다.

“그냥 올라오슈.”

없다는 돈, 야박하게 더 내라고 닥달할 수도 없고, 인상 찌푸려 본들 누구에게 하나 득 될 게 없다는 사실을 기사님은 20년 넘게 돌아다닌 당진바닥처럼 훤히 안다. 때로는 버스에 오르다 말고 주머니에 돈이 한푼도 없음을 알고 도로 내려서 우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도 기세좋게 버스부터 오르고 나서 차비 없으니 좀 봐달라고 하는 녀석들은 베짱 좋은 놈들이다.

옛부터 서민들의 발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그야말로 차없는 진짜 서민의 발이거늘 몇백원 때문에 노인네나 아이들의 마음을 서럽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할머니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금새 이야기들을 늘어놓으신다. 버스안이 금새 더 밝아진다.

콩을 몇됫박 보자기에 싸고 오른 할머니 한분은 “합덕께에 돈사러 간다”고 하신다. 아직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곳도 버스 뿐이다.

합덕에 도착할 때까지 한시간 동안 버스에 오르내린 사람은 아무리 계산을 불려도 스무명 남짓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머지않아 버스도 골동품 전시장에 가게 될 것 같다는 말에 기사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물론 오늘은 주로 오지마을을 도는 날이어서 그렇기도 하다. 타는 사람이야 고작해야 한둘뿐이라고 해도 버스가 없다면 꼼짝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니 오지를 도는 버스의 고단함이 바로 그런 수수한 것이다.

이 버스의 기사 김길성씨는 당진에서 버스기사를 한지 한 20년 된다. 하지만 고향인 고대면을 뜬 뒤 다른 차들을 몰았던 경력까지 치면 30년이 다 된다. 당진에 와 버스기사를 하기 전에는 화물차를 몰며 사업을 했었고, 그 전에 군대에 있을 때에도 운전을 했다.

이제는 차만큼, 차에 달린 부속품만큼 그의 인생에서 친숙한 것은 없다. 털털거리는 커다란 몸집의 버스를 골목 골목 여유있게 돌릴 수 있는 것도, 운전석에 앉아서 누구에게나 마소를 지어줄 수 있는 것도 그 자리가 너무도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김기사님은 아직도 운전을 하기 전에 모든 잡념을 버린다.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다보면 언제든 위험한 것이 운전이다. 그랬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세워야 할 정거장을 건너뛰기 십상이다. 운전중에는 절대로 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김기사님의 지론이다. 30년의 경력, 그것은 실력이 아니라 겸손함이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늘 고맙게 생각하죠. 저에게 걱정거리를 만들어주질 않으니까요.” 20년 가까이 버스운전을 하면서 ‘무사고운전’의 명예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아내 덕으로 돌린다.

버스는 한 10분 쉬었다가 우강면 원치리로 간다. 길들은 포장이 되었지만 꽤 오지인 마을이다. 마을을 한바퀴 돌아 나온 버스는 잠시 후 다시 양촌으로 나간다.

“훤하죠. 당진바닥이. 눈 감아도 보이는 걸요. 길이 어디가 어떻게 패어 있는지 까지요.”

김기사님의 이야기가 문득 그림같다. 그러고 보면 김기사님이 익숙해 있는 것은 ‘차’가 아니라 ‘길’일 것이다.

길은 마음의 그림이다. 30년 운전한 사람의 마음에는 이미 길이 있을 것이다. 그는 그저 길 위를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길을 따라 달리고 있을 것이다. 휘파람을 불며.

그래서 길은 사랑일 것이다.

김태숙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