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지역언론연대 연수기(2) / 지방자치1(사진)

자치단체장 변동에도 정치적 안정

편집자주

본사를 비롯한 전국 30여개 지역신문의 모임인 (사)바른지역언론연대에서는 2001년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지역신문과 지방자치 현황을 둘러본 데 이어 올해에는 최종길 발행인을 비롯한 임직원 6명이 참가한 가운데 7월29일부터 10박11일의 일정으로 유럽연수를 실시했다.

이번 연수에서는 독일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지역신문사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그리고 스위스 루체른, 인터라켄과 프랑스 파리의 문화자원 등을 견학했다

독일연수에는 에어크라트시의 민원국장으로 있는 크뤼거씨가 일정을 함께 했고 한국언론재단 독일통신원인 심영섭씨가 통역을 맡아 수고해 줬다.

독일의 지역신문 " 손은영 기자

독일의 지방자치Ⅰ " 유종준 기자

독일의 지방자치Ⅱ " 유종준 기자

독일의 문화 " 김정진 기자

스위스·프랑스의 문화 " 이희철 기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시장

이번 유럽연수의 첫 방문지인 독일 노르트 라인-베스트팔렌주의 에어크라트 시에 도착한 연수단 일행은 바로 다음날 시 민원국장인 우베 크뤼거씨의 안내로 시청을 방문했다.

시청 2층에 자리한 회의실에서 연수단은 아르노 베르너(Arno Werner) 시장을 만나 간단한 환영식에 참석했다. 외국에서 온 낯선 손님을 맞는 이 환영식에는 민원국장과 젊은 여비서 외에 다른 수행원은 보이지 않았으며 시장은 형식에 별로 구애받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하며 우리를 맞이했다. 탁자 위에는 커피와 음료수, 과일 등이 놓여 있었는데 ‘셀프서비스’라며 권하기도 했다.

환영식을 마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연수단 일행은 뜻밖에도 베르너 시장이 보수적 성향의 야당인 기민당(CDU) 소속임을 알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혀 권위적인 느낌을 주지 않았던 환영식과 시장의 태도에서 보수적 성향의 야당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에 대해서는 사민당 소속 슈뢰더가 수상인 좌파연합 정권이라는 정도의 정치적 상식밖에 없었던 점도 작용했다.

개발이익 보다는 녹지공간이 더 중요

한국의 소도시에서 비교적 심각한 문제인 노인문제에 대해 베르너 시장은 오히려 노인들이 가장 부유한 층이라고 설명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우리 지역에서는 수많은 노인들이 빈곤과 소외감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노인들이 부유층이라니.

녹지정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개발압력이 만만치 않을 것임에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가며 녹지공간을 보호하고 있었다. 물론 상업용지나 공장용지로 개발한다면 시에 많은 세금이 들어오겠지만 시민들의 요구가 있는 만큼 대가를 치르더라도 녹지를 보호하겠다는 것.

그린벨트 한 점도 남기지 않으려는 한국의 상황과 많은 부분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의문들은 통역을 맡았던 한국언론재단 독일통신원 심영섭 박사와 아데나워 재단 소속으로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는 크뤼거 민원국장의 보충설명으로 서서히 풀려갔다.

이미 독일은 비스마르크 시절부터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실업연금제도가 시작됐으며 50년 전부터는 복지연금 제도도 실시됐다. 각종 연금과 함께 복지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노인들은 충분한 생활보조와 의료혜택을 받으면서 좀더 여유 있게 남은 인생을 설계 할 수 있다. 그러니 빈곤이나 소외감의 문제가 우리처럼 심각할 리 없다.

충분한 녹지공간과 시민공원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에어크라트 시의 도시정책도 사유지보다 공유지가 많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산업시설 유치로 인해 들어올 몇 푼의 돈보다는 녹지공간과 도시미관을 더 중요시 여기는 시민의식과 이를 시 정책에 반영할 줄 아는 자치단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높은 자치권 보장된 에어크라트 시

베르너 시장과는 에어크라트 시의 지방자치에 관해 몇 차례 더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연수단은 평소 궁금했던 내용에 대해 봇물 쏟듯 질문을 퍼부었는데 그 중에는 서로의 제도와 상황이 달라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재정자립도에 대한 질문에 대해 베르너 시장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에어크라트 시를 비롯한 독일의 자치단체는 우리와는 달리 재정자립도가 별 의미가 없었다.

한국처럼 중앙정부에서 세금의 대부분을 걷어가고 그 중 일부를 지방교부세나 양여금의 형식으로 선심 쓰듯 ‘하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치단체에서 그에 해당되는 재원을 스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어크라트 시의 인구는 불과 5만이다.

당진군 인구의 반도 안 되지만 재정자립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치권은 그 반대였다. 경찰권은 상급자치단체인 베트만 시에 있었지만 소방업무와 주택공사, 노동청 사무소 등은 모두 에어크라트 시의 권한 하에 있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정당 민주주의로부터

기민당 소속인 베르너 시장은 지난 1998년 지방선거 당시 기민당의 시 조직에서 일반당원들에 의해 후보로 선출된 후 본선에서 승리했다.

지구당에서 마을별 조직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정당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중앙당이 각 시 조직에서 결정된 사항을 뒤집거나 영향력을 끼치려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정당의 시 조직에 소속된 당원들은 소득에 따라 일정액의 당비를 내며 중요한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정당정치가 잘 발달되어 있는 독일은 모든 선거에서 인물보다는 정당을 중심으로 선거가 진행된다. 시민들은 인물보다는 어느 정당의 후보인가를 중요시하며 자신의 생각과 가장 일치하는 정당에 표를 던진다.

시장과 시의원은 정당추천이나 개인자격 혹은 시민단체 후보로 출마가 가능하며 개인자격이나 시민단체 후보로 출마할 경우 160명 이상의 주민들로부터 추천을 받으면 가능하다.

정당추천을 받아 후보로 등록할 경우는 후보자가 정당에서 민주적 방법을 통해 추천받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후보등록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 만큼 정당 민주주의를 풀뿌리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었다.

4주전에 공개되는 예산안, 의회는 저녁시간에

에어크라트시의 시의원과 시장은 주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 또한 시장은 시의회의 의장이 된다.

독일에서 시의원은 명예직으로 보수가 적기 때문에 시의원 모두 각자의 직업을 갖고 있다. 따라서 모든 회의는 저녁에 개회된다.

선거비용은 기탁금이 없고 홍보물 인쇄와 선전비 정도이기 때문에 입후보자의 재정적 여력은 고려할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예산안은 의회에 상정되기 4주전에 주민들에게 공개된다. 이와는 별도로 각 언론사에도 예산안이 보내진다. 주민들은 예산안에 대해 검토하고 의견을 나타낼 권리가 있으며 주민들이 의견을 제출하면 의회는 반드시 그 의견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예산안 공개를 거부하고 의회가 열리기 불과 4~5일 전에 안건 상정과 함께 공고함으로써 실질적인 주민참여를 막고 있는 한국의 자치단체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성숙한 지방자치는 제도화와 시민참여를 필요로 한다

시민의 자유와 시민 자신들에 의해 운영되는 분권화 된 행정의 표출인 지방자치정부는 독일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 기원은 중세시대의 자유도시의 특권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본격적인 자치정부의 발상은 19세기초 프러시아 시절에 생겨났다. 오랜 전통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형성된 독일의 지방자치는 이미 제도화된 형태로 주민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국에서 온 연수단이 볼 때 매우 개혁적이고 민주적이며 진보적이라고 느껴지는 에어크라트 시의 지방자치는 이미 제도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보수적인 인사가 시장에 당선된다고 해서 급격한 정치적 반동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독일에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지방자치는 이미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아직도 법 제도가 취약한 상태에서 단체장의 마인드에 지방자치의 거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이 교체된 상당수 자치단체에서 조직체계와 인사의 급격한 변화로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아직 ‘기본’이 안 갖춰진 상태이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민주적 지방자치의 운영도 한국의 현실에서는 급진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독일의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기반으로서 정치분권화와 지방자치가 근대국가의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를 위해서는 제도화와 시민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