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원 "춤은 마약과 같은 존재, 묘한 매력을 줘요”
서석 “잘 나갈 때는 한달에 15번정도 공연 다녔어요”
손정민 “만화가도 되고 싶고, 시인도 되고 싶어요”
양한열 “가장 속상할 때가 다쳐서 춤 못출 때예요”
김진식 “춤출 때는 잡생각이 없어져요”
신용식 “춤이 그냥 좋아요”
지난 9월말 열린 제26회 상록문화제 청소년축제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었다. 고난도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떤 아이들인지, 무슨 생각을 갖고 사는 아이들인지 궁금해졌다.
가을하늘답게 유난히도 새파란 하늘, 조금은 구슬땀을 흘리며 설렘 반, 호기심 반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청소년 문화의 집은 처음 가본지라 몇층에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음악이 흐르는 곳을 찾았다. 아이들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약속은 하고 갔지만 낯선 손님 방문에 아이들은 어정쩡한 인사로 맞이했다.
꿈은 댄서, 현실은 헤어디자이너인 ‘종원’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브레이크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종원(19)이.
“처음엔 집에서 많이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대회입상도 좀 하고 ‘그 집 자식 춤 한번 잘추데’라는 동네분들의 말을 들은 부모님이 춤추는 저를 인정해주셨어요.”
지금은 신성대에서 미용예술계열 헤어디자인을 공부하는 종원이는 “집에서 강요도 있었지만 현실을 깨달으면서 인정하기로 했죠. 헤어디자이너가 되기로요. 하지만 지금도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댄서라고 대답해요”라며 아직도 댄서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브레이크댄스 춰본 사람들 중에 병원신세 안져본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종원이는 “팔, 다리 부러지는 건 예삿일”이라며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 얘기한다.
“지금은 청소년 문화의 집이 있어 걱정이 없지만 예전엔 연습할 공간이 없어 공동묘지나 논에서 볏짚 깔아놓고 하고 그도 없으면 길에서 손이 까지면서 했어요.”
그렇게 다치면서까지 춤을 추는 이유를 종원이는 간단히 대답한다.
“춤이란 저에게 마약과 같은 존재예요. 춤은 묘한 매력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거든요.”
이젠 꿈을 접어야하는 ‘석’
처음 이 모임을 만들어 시작한 석(22). 함께 시작한 친구들은 이제 다 떠나고 혼자 남았다. 하지만 석도 이젠 조금 있으면 춤을 그만둬야 한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만 연습을 걸러도 몸이 부자연스러운데 군대 갔다 오면 댄서의 수명은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브레이크댄스는 수명이 짧아 고작해야 5~6년, 그래서 다들 젊었을 때 추는 춤이라고들 한다.
“처음 춤에 미쳐 춤밖에 보이지 않았을 때는 잘 몰랐요. 하지만 조금 지나면 이것이 자기 미래가 되질 못한다는 것을 다들 알아요.”
자기 미래가 되지 못한다고 말은 하지만 군에 입대하면 그렇게 좋아하던 춤을 못춘다는 생각에 이내 얼굴에 웃음이 가신다.
잘 나갈 때는 한달에 15번 정도 초청공연을 다닐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허나 지금은 춤추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많이 줄고 해서 당진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며 못내 아쉬워한다.
“처음에는 부모님 몰래 시작했는데 요즘은 별로 뭐라 하시지 않아요. 그런데 사회의 시선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춤추는 것 자체를 놓고 예전처럼 무조건 나쁘게만 바라보지 않아요.”
꿈을 현실로 이루려는 ‘정민’
합덕 운산리에 산다는 정민(20)의 첫인상은 범상치가 않았다. 군복상의에, 조금 긴 파마머리, 대여섯가닥의 굵게 딴 가발까지. 어딘지 모르게 다른 아이들과 달라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정민이의 대답을 듣고서야 이해가 됐다.
“전 댄서가 꿈이예요”
중3 때부터 시작한 정민이는 요즘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춤 연습을 하는 한편, 서울로 오디션을 받으러 다닌다. 오디션에 떨어질 때마다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이 생긴다는 정민이는 “전보다 더 열심히 하는거죠"라며 웃어보인다.
집에서 처음부터 적극적인 후원아래 시작한 춤. 하지만 집안형편이 넉넉치 못한 탓에 혼자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많은 부분이 힘든 정민이다.
“그래도 전 꿈이 많아요. 지금은 댄서의 꿈을 위해 오디션을 보러 다니지만, 만화가도 되고 싶고 시인도 되고 싶어요. 그래서 뭐든지 무조건 열심히 해요”
아직 성공보단 도전이란 단어가 어울릴만한 나이답게 ‘뭐든지 열심히 한다’는 정민이의 말에서 희망을 찾는다.
춤으로 인해 착해진다는 ‘한열’
우강에 사는 한열(17)이는 현재 서야고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청소년의 집이 있어 좋은 공간에서 큰 거울로 내 모습을 보며 춤출 수 있어 좋아요. 또 월요일과 국경일만 빼고 문을 열기 때문에 매일매일 연습이 가능해 신이 나요.”
매일 연습하면 학교나 공부에 소홀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춤추는 시간에 술마시고 나쁜 짓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춤추면서 착해지는 친구들도 많다”며 당당하게 대답한다.
학교에서도 늘상 연습을 한다는 한열이는 “가장 속상할 때가 다쳐서 연습 못할 때”라며 요즘 한창 춤에 흠뻑 취해 있다.
꺽다리 ‘진식’·살인미소 ‘용식’
합덕중 3학년인 진식(16)이와 서야중 3학년인 용식(16)이는 친구다.
‘춤출 때는 잡생각이 없어진다’는 진식이와 ‘춤이 그냥 좋다’는 용식이는 선배들의 춤추는 모습에 반해 작년 가을부터 함께 하기 시작했다.
180cm가 넘는 큰 키로 춤추기 힘들 것 같아 보이는 진식이, 워낙 수줍음을 많이 타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의심까지 가는 용식이. ‘초록은 동색’이라고 하던가. 둘다 워낙 말수도 없고 말을 걸어도 웃으며 도망가기 바쁘다.
종원이는 “평소에도 둘다 말수도 적고 연습만 열심히 하다 간다”며 후배들을 기특하다고 칭찬한다.
사진찍자고 사정해도 도망치기만 하더니 선배 종원이가 말하니깐 바로 그 자리에서 폼을 잡는 아이들을 보며 천진스러움을 느꼈다.
그래도 진식이와 용식이는 춤꾼답게 춤 한번 보여달라고 하자 군말없이 자신있게 선보인다.
인터뷰내내 얘기하다 말고 춤도 추고 전화하고, 또 그 전화내용을 함께 얘기도 하고, 이 아이들에게는 낯선 손님인 나를 별로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춤에 관해 질문하면 정신없이 쏟아붓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커서 한때 온 열정을 바쳤던 것이 있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춤이든 뭐든간에 꿈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겐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요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라는 공간안에서만 열정을 쏟아 부으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럴 수는 없다.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을 만나면서 공부만이 최선이 아닌 각자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들에게서 희망의 향기를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