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1 때부터 1년반 동안 거동 못하는 할머니 밤낮으로 병시중
“아픈 사람 돌봐주는 물리치료사나 간호사 되고 싶어요”
오는 3월에 당진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신혜진(당진중3) 양에게선 17살의 사춘기 소녀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이 묻어 나온다. 마냥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겨울방학 동안 혜진이는 부모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진선미왕족발에 나가 주방과 홀을 드나들며 심부름을 하고 있다. 누가 시켰다거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부모의 힘든 일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까탈스럽거나 새침하지 않아 또래들에게 활발하고 밝은 친구로 알려져 있는 혜진이는 중1때부터 일년 반 동안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밤낮으로 돌봐드렸다. 임순옥 할머니가 거동을 못하게 된 건 혜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지난 2000년의 일이다. 집에서 콩나물을 길러 시장에 나가 팔곤 하던 임순옥 할머니는 콩나물을 팔고 돌아오던 길에 뒤에서 경적을 울리는 오토바이를 피하려다가 길가에 쓰러지셨고, 일흔 넷의 할머니는 그 후로 반신불수의 몸이 되셨다.
당시 신현태(47, 부)씨와 김선자(44, 모)씨는 한참 ‘진선미 왕족발’ 개점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할머니를 돌봐드릴 여력이 없었다. 몇 번의 사업이 실패한 후 가까스로 결심을 굳힌 부부에게 ‘진선미 왕족발’은 마지막 희망이었던 것이다. 천안에서 한달 동안의 입원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신 할머니의 병시중은 혜진이에게로 돌아갔지만, 혜진이는 얼굴을 찌푸리지도 손을 내젓지도 않았다.
“학교가 끝나는 대로 집에 와서 집안일도 하고 할머니도 돌봐드렸죠.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말동무도 되고, 불편하신 곳을 안마나 찜질도 해드리고, 대소변도 봐드리고, 심부름도 하고, 밥도 해드리고...그랬어요. 물론 친구들과 놀고 싶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부모님께서 워낙 바쁘셨거든요.”
‘진선미왕족발’의 영업이 끝나면 새벽3시를 넘기기 일쑤였고, 부부는 지친 몸을 이끌고 잠시 단잠을 청한 후 다시 가게의 문을 열어야 했다. 학원 한번 제대로 다녀보지 못했지만 혜진이의 입에선 불평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밥 반만 줘라. 많이 먹으면 많이 싸니까, 니가 치우기 힘들잖여”라는 할머니의 말에 “많이 드시고 많이 싸세요. 제가 다 치울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구요”라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그러던 할머니는 끝내 노환을 견디지 못하시고 지난해 눈을 감으셨지만 아직 혜진이의 가슴속엔 할머니가 살아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흘린 숱한 눈물만큼이나 혜진이의 할머니에 대한 사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혜진이의 꿈은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물리치료사나 간호사가 되는 것. “고등학교 들어가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라며 반짝 웃는 혜진이. 아픈 사람을 돌봐주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며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지를 혜진이는 이미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