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농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후퇴하고 있는 농가소득은 농촌의 붕괴를 현실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쌀 재고 누적과 다가오는 세계무역기구(WTO) 재협상, 마늘협상 파동,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타결 등은 농촌을 압박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불분명하고 위태로운 농업의 현실과 맞물려 농업협동조합도 총체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농협은 변화와 혁신으로 조합원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기보다는 ‘협동조합 본연의 역할인 경제사업이나 지도교육사업은 뒷전인 채 돈장사에만 급급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합원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농업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농협은 어떠한 역할과 책임을 이행해야 하는 가. 유통활성화 사업으로 조합원들의 소득을 향상시키고 있으며 당진군꽈리고추 연합사업 등의 경제사업으로 발빠르게 농업시장의 변화에 대처하고 있는 합덕농협을 중심으로 농협의 역할을 짚어본다.

이희철 기자 hclee@djtimes.co.kr

이제는 경제사업이다

농협의 사업은 크게 예금과 대출의 금리차로 수익을 창출하는 신용사업과 농자재 및 농산물 판매로 수익을 얻는 경제사업으로 나뉘어진다. 농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농협의 본래 설립취지는 상부상조와 협동정신에 있다. 따라서 농협은 농민들이 농자재를 값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고 농민들의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판매하는 경제사업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비율은 평균적으로 7:3으로 신용사업을 활용한 수익창출에 편중돼 있어 농협의 설립취지에 크게 어긋나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농협의 역할도 판매처 및 직거래처 확보와 농산물의 수취가격 제고에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 농협의 수익구조는 조합원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합덕농협은 올해 대출금리를 1.1% 인하했다. 대출금리 1.1%인하는 연간 1억7천~8천만원 정도의 수익을 감소시키지만 농가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조합원들을 위한 결단이었다. 1억7천여만원은 합덕농협의 지난해 당기순이익 2억7천여만원의 63%에 해당돼 농협경영의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합덕농협이 대출금리 1.1% 인하를 과감히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장의 변화에 대처해 발빠르게 경제사업의 형태를 바꿨기 때문이다. 즉, 조합원들의 농산물을 단순히 소비시장에 배달하는 형태에서 탈피해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게 농산물을 상품화하고 대형유통업체 등과의 직거래를 통해 농산물의 수취가격을 높였던 것이다. 지난해 합덕농협은 꽈리고추, 당근, 대파, 감자, 무, 쪽파, 배추 등의 직거래를 통해 1천9백여만원의 수익을 향상시켰다.

윈-윈(WIN-WIN) 전략

전국의 1,380여개 지역조합 중 300여 조합이 유통활성화조합으로 선정돼 농림부로부터 유통활성화자금을 지원 받고 있으며 현재 당진지역의 경우 송악농협과 합덕농협이 유통활성화 조합에 해당된다. 이중 합덕농협은 지난해 농림부로부터 22억7천4백만원을 저리자금으로 지원받아 유통활성화사업에 투자했다.

특히 합덕농협은 지역특산물인 꽈리고추 재배농가의 수취가격을 제고하기 위해 산지유통센터(APC)에서 공동선별작업을 거쳐 상품화한 후 대형유통업체와 직거래를 실시, 공판장 시세보다 15~20% 높은 가격으로 판매했다. 공판장 중심에서 대형유통업체로 변화하고 있는 소비시장의 흐름에 발빠르게 대처한 결과였다.

산지유통센터 전국적으로 만성 적자사업으로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합덕농협은 이러한 직거래를 통해 2001년에는 9백만원의 매출이익을, 지난해에는 21억원의 매출액과 1억4천6백만원의 매출이익을 달성했다.

이같은 경제사업을 통한 이익창출은 조합원들에게 실리를 안겨줄 뿐만 아니라 신용사업에 편중된 수익구조를 개선시킨다. 또한 대출금 인하로 연계돼 제1금융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농협의 신용사업에 대한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요인이 된다.

즉, 직거래를 통한 판매사업의 활성화는 조합원들의 수익을 높여주고, 농협 자체의 경영을 개선시키며 신용사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윈-윈(WIN-WIN) 효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꽈리고추 연합사업으로 소비시장 공략

당진지역의 276개 꽈리고추 재배농가와 합덕·순성·면천·정미·대호지·고대 등 6개 농협이 연계해 오는 5월부터 당진군꽈리고추 연합사업을 시작한다. 총 1,382톤의 꽈리고추 취급량이 예상되는 이 연합사업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꽈리고추를 공동선별하고 등급별로 상품화해 공동브랜드로 대형유통업체에 판매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미 밀양의 부북농협은 ‘고르고 고른 고추’로, 고창의 대산농협은 ‘참숯배추’로, 합천의 율곡농협은 ‘첫눈에 반한 딸기’로 소비시장을 공략해 높은 수익을 얻고 있다.

이번 꽈리고추 연합사업은 충남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대규모 연합사업으로 지난해에는 합덕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실시됐으나 오는 5월부터는 합덕농협의 주도와 5개 지역농협의 참여 아래 광범위하게 실시될 예정이다.

이 연합사업은 전국적으로 체인점이 대폭 확장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E마트, 까르푸, 월마트, 삼성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의 대형유통업체를 주요한 소비처로 공략할 계획이다.

5월부터 10월까지 가락동공급물량의 60~70%를 차지하고 있는 당진 꽈리고추를 규모화해 당진지역의 전체 꽈리고추 생산량 중 20%인 1,382톤을 상품화해서 직거래한다면 농산물 수취가격 제고, 시장교섭력 우선권 확보, 소비시장 흐름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 농협의 판매사업 내실화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윤재형 조합장의 설명이다.

합덕농협은 이번 사업을 위해 농협중앙회와 군의 지원을 받아 오는 5월 내에 꽈리고추 자동선별·세척기를 도입할 계획이며 이미 실험단계에 있다.

정부정책과 시장의 흐름 잡는

조합장 마인드 절실

그동안 개별농가에 대해 지원한 정부의 농업정책은 결론적으로 농업인들의 부채를 증가시켰다는 점에서 실패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농림부는 농산물의 상품화 및 유통으로 농업지원정책의 초점을 선회했다. 소비시장의 축이 공판장에서 대형유통업체 쪽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농업정책과 소비시장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데 비해 대부분의 지역농협은 고정적으로 확보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배부른 장사를 할 뿐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로부터 계속 이어진 사업들을 무난히 끌고 나가기만 하면 매년 비슷한 당기순이익을 올릴 수 있으며 조합원들로부터 “그럭저럭 잘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조합장의 마인드가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그 농협은 침체될 수밖에 없다. 농협이 변하기 위해선 조합장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 농협관계자들의 지론이다.

“다음 선거를 위해 자리보전만 할 뿐 귀를 닫고 있는 조합장이 정부의 농업정책과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해 조합원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는 한 조합원의 탄식은 조합장과 농협이 이제 그만 잠에서 깨어나기를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