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1천억 부자가 59명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3조원, 2조원, 1조원의 부자도 있는데 모두 대기업의 소유주들이 차지하고 있다.

필자의 말동무인 교장선생(정년퇴임)은 퇴직금 중 처음에는 몇 백만원을 들고 천안에 있는 증권회사의 문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횟수가 잦아들면서 더 많은 돈을 들고 나갔다. 몇 년째인지는 모르지만 퇴직금이 깡통계좌에 빠졌다는 뒷소문이 어수선하게 들린다.

국제 통계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도가 선진국 국민들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조사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물질의 풍요가 마음의 행복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장스님의 티벳트 기행문을 읽어보면 “티벳인은 사람이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재산이라고 생각하고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재산을 쌓기 위해 악업을 피하고 선업을 쌓기 위해 매일 기도하고 수행하고 선행을 한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성공은 출세를, 얼마나 큰 재물을 모았느냐로 통하고 있지만 티벳인에게 성공은 얼마나 남을 많이 도왔느냐, 얼마나 자만심을 없앴느냐로 가늠된다. 돈과 물질문명이라는 잣대로 볼 때 티벳은 가난한 나라이다. 그러나 물질문명을 누리는 나라마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세가지가 없다. 정신병이나 우울증 환자, 노인성 치매 환자, 사회범죄가 그것이다.”

제러미 리프킨 교수가 쓴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좦에는 “산업시대에는 소비자에게 상품을 팔면서 무료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되고 있다. 요즘은 후속 서비스를 통해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맺겠다는 계산으로 상품을 아예 공짜로 제공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소비자의 의식도 소유에서 접속으로 서서히 기울 것이다. 접속수단으로 가전제품, 자동차, 아파트같은 고가품은 공급자에 의해 소비자에게 단기 대여 임대 회원제 같은 다양한 서비스 계약의 형태로 제공될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접속으로 작년 대선에서 큰 힘을 발휘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며 금번 노무현 정권의 장관추천도 접속으로 인해 많은 인재가 물망에 오르내렸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총리 내정자를 두 명이나 쓴 잔을 마시게 한 접속문화로 “참여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접속이 다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접속에는 모략, 비방, 중상도 뜨고, 큰 돈도 오고가며 사취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접속의 익명, 필명보다는 주소나 전화번호 게재도 나쁜 것들을 정화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본다.

접속문화의 문외한들은 침묵을 지킨다. 접속을 몰라서이다. 이제라도 칠공(70)세대에게 충언을 드린다. 늙었다, 늦었다 하지 말고 접속사회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잘못된 것 바로잡고, 잘못 가는 방향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칠공(70)세대들이 침묵으로 세상을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로 우리의 삶의 지혜, 축적된 노하우를 아낌없이 발휘해 밝은 사회, 올바른 사회, 올바른 국가관을 세워 주자.

‘노년이 인생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새로운 약속과 진정한 풍요의 시간임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