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사는 남모르게 하는건데, 신문에까지 나면 우리가 한 일은 봉사가 아니지.”
합덕대건노인대학 김귀자 교학부장을 통해 어렵게 만난 변옥자(63)·윤정화(62)씨의 첫마디가 그랬다. 잠시 할 말을 잊고 있다가 궁여지책으로 “다른 사람들도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죠”하고 얼버무리고 나서야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여년 전, 변옥자씨와 윤정화씨는 신합덕성당에서 홀로 무료염습을 하던 분이 돌아가시면서 처음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동훈 회장을 중심으로 신합덕성당에서 이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8명. 그들은 성당에 다니던 사람들은 물론 오갈데 없는 무의탁노인들이나 독거노인들의 시신까지 무료로 염습을 해준다.
한 세상을 살면서 받은 고통과 슬픔, 아픈 기억들이 배어있는 시신을 깨끗이 씻어 가벼워진 몸만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것이다.
신앙심이 불러다 준 힘
염습을 하면 한참 기운이 펄펄 나는 건장한 남자도 온몸에 땀이 비오듯 한다. 회갑을 넘긴 여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변옥자·윤정화씨는 염습을 하는데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처음 염습을 할 때도 무섭다거나 힘들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않았다는 두 봉사자는 마음 속에 있는 신앙심이 힘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혈압으로 돌아가신 할머니를 염습한 적이 있는데 시신이 너무 험해 그걸 지켜 본 한 남자가 사흘을 못 먹고 굶었다고 한다. 단지 힘만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그 남자는 이들보다 훨씬 훌륭한 봉사자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험한 일
20여 년 동안 염습을 해오면서 보통 사람으로는 차마 보기 힘든 일들도 많이 보았다. 홀로 사는 할머니의 시신이 며칠 지난 뒤 발견된 적이 있었는데, 부패가 심하고 너무 많이 부어 있어 널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자손들마저 무서워서 방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험하게 되어버린 시신의 팔에는 죽은 피가 고여 큰 물주머니가 생겨 있었다.
부패가 심한 시신의 경우, 몸을 씻길 때 살점이 묻어나거나 손가락이 살 속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고, 심지어 온 몸을 기어다니는 벌레를 털어 내면서 염습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바닥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진물까지 말끔하게 치워놓고 나서야 염습이 끝난다.
밤중이고 새벽이고 연락이 오면 열일을 제쳐놓고 달려가는 이들, 물 한모금 얻어마시지 못하고 일을 할 때도 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 변옥자씨는 발톱 수술을 하고 불편한 몸으로 염습을 한 적도 있다. 보통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떠나는 이의 마지막 길까지 배웅
1년에 평균 30구 정도의 시신을 염습하는 변옥자·윤정화씨는 지금까지 600여 구의 시신을 거두었다. 보통 시신 1구에 4명이 1시간 정도 걸리는 염습을 끝내고 나면 힘에 부치는 일이라 지칠만도 한데 굳이 산에까지 가서 하관하는 걸 지켜본다고 한다. 죽은 자의 마지막 길에 성가를 불러 주고 지친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도록 기도도 해 준다. 하관식이 끝나면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로해 주는 일도 그들의 몫이다.
가족들의 고맙다는 인사말이면 피로했던 몸과 마음이 가뿐해진다는 변옥자·윤정화씨. 성당에 찾아오기도 하고 신자가 되기도 할 때는 더없이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몸으로 실천하고 마음으로 감동시키는 이들의 활동은 전도 이상의 전도인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먼 길,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은 그 길의 끝자락에 서서 배웅을 해 주는 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안고 편안히 떠나갈 것이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
봉사할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
두 사람이 한번은 여 선생님의 모친상에 간 적이 있었다. 골다공증으로 고생을 하던 분이었는데 다리를 오므린 채로 임종해 염습을 하려면 다리를 펴야 하는데 웬만한 힘으로는 펴지지가 않았다. 차마 가족들에게 보일 수 없어 가족들을 다 내보낸 뒤, 억지로 다리를 꺾어서 펴 놓고 염습을 했다. 생전에 그렇게 고생을 하고 다리도 못 펴고 돌아가신 그분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이 일을 끝내고 돌아와서 한달을 앓았다고 한다. 그나마 이런 분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다행스럽다는 이들은 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봉사를 나가서는 물 한 모금 얻어마시지 마라”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가슴깊이 새겨놓고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하려고 노력한다는 변옥자·윤정화씨는 이 일로 인해 내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반대하던 남편, 지금은 든든한 후원자
처음부터 이 일을 순조롭게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염습을 끝내고 집에 오면 옷에 냄새가 배서 반찬도 못만들게 할 정도로 가족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었다. 그러나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을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끝내는 남편도 생각이 바뀌게 되었고 지금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변옥자·윤정화씨는 합덕대건노인대학에서도 13년동안이나 독거노인들에 대한 봉사를 해왔다. 직접 집에 찾아가 청소와 빨래를 해 주고 곳곳을 돌며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해 주는 이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게 소망이 있다면,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아서 지금까지 해 온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라고 한다.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끊임없이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변옥자·윤정화씨의 따뜻한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가족들에게는 든든한 위로가 되고,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배웅이 되고 있었다.
이필용 기자 pylee@djtim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