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연기념물 제317호 회화나무,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이의무신도비,
수십 개의 문화재급 석물이 있는 유적지
차 안이 제법 뜨끈하게 달구어져 있었다. ‘능안’을 찾아가는 오후, 봄기운이 완연했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영혼이 있을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믿음을 어떤 사람들은 미신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거라고 주장한다. 이런 생각이 미신이든 아니든 간에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자신은 후손들을 돌본다고 믿게 되었다. 이런 관념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존재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관념은 풍수지리라는 독특한 학문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덕수 이씨의 묘역인 ‘능안’에 가기 전, 회화나무를 보기위해 송산면 삼월리에서 잠시 행보를 멈추었다. 조선 중종때 좌의정을 지낸 용재공 이행이 중종 12년(1527)에 이 곳에 내려와 집을 지으면서 가문과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하여 심었다고 전해지는 이 회화나무는 당진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이다. 1982년에 천연기념물 317호로 지정된 이 나무는 수령이 무려 450년이고 높이 21m에 둘레가 5.65m에 이르는 거목이다. 하늘을 향해 넓게 뻗어올라간 가지는 균형이 잘 잡혀있고 흠 없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거대한 뿌리로 땅을 단단히 움켜쥐고 하늘이라도 받치고 있는 양 그 위용을 뽐내고 있는 회화나무의 웅장함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옛부터 우리나라는 오래된 나무에는 신(神)이 깃들어 있어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어왔다. 이 마을에도 회화나무에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들고 적게 피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나무가 꽃을 피우는 8월 중순경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마음먹고 능안으로 차를 돌렸다.
송산면 도문리에 위치한 능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덕수 이씨의 묘역인 이 곳은 수십 기의 묘와 그 묘를 지키고 있는 문화재급 석물들이 있었다. 잔디가 넓은 벌판을 이루고 있는 이 곳, 능안의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앞쪽은 탁 트인 시야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농로가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능안에 도착해서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마총이었다. 아마도 죽기 전 주인으로부터 끔찍이 여겨진 말이었나 보다. 신라의 화랑 김유신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애마의 목을 잘랐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마총을 시작으로 위쪽을 올려다보면 여러 기의 묘 중에 신도비가 서 있는데 이것이 이의무 신도비이다. 비의 머리에는 ‘증영의정이공신도비명(贈領議政李公神道碑銘’이라 씌여있는데 비명과 서는 좌의정 홍언필이 지었고 글씨는 성균진사 신효중이 쓴 것이다. 이 비의 이수는 쌍룡이 다투는 듯한 형상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였는데 그 솜씨가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의무 신도비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3호로 지정되어 있다.
능안은 원래 왕릉이 될뻔한 지리였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왕이 이곳 송산면 도문리에 명당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풍수지리의 명사를 면천(지금의 당진)에 파견하여 왕릉자리를 찾게 했다고 한다. 왕명을 받은 국사가 이 곳을 발견하였으나 이미 덕수 이씨 묘역으로 정해져 있어 산의 형세를 그릴 때 북쪽으로 건해풍이 오고 해수가 보이는 대지명당임을 알면서도 이를 은닉하기 위하여 북쪽으로 수목이 밀집해 있어 건해풍을 가리우는 모습을 그려 왕릉 자리가 아니라는 명분을 만들어서 보고했다고 전해진다. 또다른 전설에 의하면 국사가 이 곳에 파견되어 살펴본 바 왕릉의 자리가 못되었다고 하여 능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전해진다.
덕수 이씨 가문에는 정승 벼슬 말고도 양관(홍문관, 예문관)대제학 등 학문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명당자리에 묘를 써서 자손이 번창했다는 말이 신빙성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당진에 이런 역사적 유적지가 있다는 것을 뿌듯해하면서 능안을 떠나왔다. 오는 길에 덕수 이씨 후손인 이우용씨가 사는 곳을 잠깐 들러 이야기를 들었다. 당진군에는 좌의정 이행이 낙향한 후 20대를 거쳐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지금은 150여 호의 덕수 이씨가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필용 기자 pylee@djtimes.co.kr
■능안 찾아오는 길 : 송산면 상거리에서 성구미 방향으로 가다 대우공업에 못미쳐 오른쪽으로 나 있는 작은 농로길을 따라가면 된다.
■회화나무 찾아가는 길 : 송산면 상거리에서 성구미 방향으로 가다 율곡 어린이집 입구를 지나는 오른쪽 소로길로 들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