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영회 비리사건 터져 회장직에서 물러나 회 해체
정열적으로 영화평론 작업, 영화강연, 무용비평을 써
(유독 김선주씨가 쓴 글을 좋아한다. 부박스런 이 시대에 그런 눈길로 위안을 느끼게 만드는 문장은 속된 삶에서 유연한 삶을 추스리게 만든다. 고종석, 조선희, 김두규의 글도 밭에 씨를 뿌려준다. 글이 진국이란 건, 모든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청빈이 무능의 소치가 아니고, 검박한 삶이 누추하지 않은 삶은 우리 시대엔 불가능 한 것일까.’라는 그러한 문장이 조근조근 가슴을 아프게 다가온다, 이 봄날에. 소리없이, 하염없이 목련꽃잎이 진다.)
심훈은 27년 7월에 이구영, 안종화, 나운규, 최승일, 김기진, 이익상 등과 영화인회을 만들어 연구와 영화 합동평(合同評)을 도모한다.
영화 ‘먼동이 틀 때’의 촬영을 시작하면서 신문에는 촬영개시를 알리고 ‘어둠에서 어둠으로’가 ‘먼동이...’로 바뀌었음도, 배우 신일선, 한병룡이 나오는 스틸사진과 함께 나온다.
물론 배우 강홍식 좥이는 1930년대에는 가수로 전향해서 '눈물의 여왕’이던 여배우 전옥(全玉)과 동거를 했다. 그녀의 ‘항구의 일야’는 당시 백만의 팬을 울렸고 강홍식도 노래 ‘처녀 총각’ ‘조선타령’ ‘먼동이 터온다’가 유행했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강효실은 후에 여배우가 된다좦도 주연이며 9월 조선일보에는 3일에 걸쳐 ‘먼동이...’의 줄거리가 실린다.
10월에는 서울 단성사에서 이 무성영화가 개봉이 돼 흥행에도 성공을 하는데, 그 이후에 감독 심훈은 친구 서해 최학송의 단편소설 ‘홍염(紅焰)’(27년)을 영화로 찍고 싶어 글로도 남겼다.
그의 ‘홍염’은 간도를 배경으로 조선사람 소작인과 중국인 자주 사이의 갈등을 그린 경향파 문학의 대표적인 소설이기도 했다.
나이가 동갑인 그가 32년 7월 9일에 죽었을 때 심훈은 ‘곡 서해(哭 曙海)’를, 다음날 ‘청춘을 말려 죽인 현실’을 시로 써서 친구이던 그를 기렸다.
27년에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외일보, 매일신보의 연애부 기자로 구성된 찬영회(讚映會) 활동으로 영화감상과 강연회를 하며 그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영화의 사회적 의의’등을 강연하며 영화 발전에 대한 생각을 강연을 통해 알리기 시작한다.(찬영회는 30년 1월, 영화배우들의 신문사 습격사건으로 임시총회에서 찬영회 해체를 결의하는데 당시 회장이 바로 심훈이었고, 우리나라에서 영화기자 비리 사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된다.)
조선일보 시절, 그는 학예면에 조선영화의 발전을 위한 일련의 평론과 영화평들을 정열적일 만큼 써서 연재를 한다. ‘조선영화의 현재와 장래’(3회분, 28년 1월), ‘아동극과 소년영화’(3회분, 28년 5월), ‘관중의 한사람으로 흥행업자에게’ ‘-해설자 제군에게’ ‘-영화계에 제의함’(3회분, 28년 11월), ‘조선영화총관’(2회분, 29년 1월. 이 평론에는 우리나라에 영화가 언제 들어왔는지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어 현재 영화비평계의 논란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1935년 이난영이 부른 유행가 ‘목포의 눈물’이 전국을 휩쓸던 7월에도 ‘다시금 본질을 구명(究明)하고 영화의 상도(常道)에로’를 ‘단편적(斷片的)인 우감수제(偶感數題)’라는 소제목을 달고 3회씩이나 연재를 했다.
이렇듯 신문에 영화 평론을 많이 썼으나 당시 조선중앙일보나 여러 잡지 등에 기고된 것들을 감안한다면 더 많은 평문들이 앞으로 나올 듯 싶다. 소설 ‘상록수’에도 잘 반영이 되었지만 그가 영화 평론을 통해 줄곧 주장한 것은 ‘조선영화’답게 영화를 만들자는 거였다. 조선적인-자생적인 영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상록수’를 영화로 찍고 싶어 자신이 시나리오도 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조선 땅에 든든히 딛고 서는 조선혼과 정신을 담은 것을 끝내 놓치고... 세월이 지나서 신상옥이나 임권택에 의해 ‘상록수’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신상옥 감독이 61년에 만든 흑백영화 ‘상록수’. 최은희, 신영균이 주연을 맡고 허장강, 도금봉, 신성일이 출연했다. 당시 공보처 주관의 제1회 대종상에서 최은희는 여우주연상을, 제9회 아시아영화제에서는 배우 신씨가 남우주연상, 허장강이 남우조연상, 그리고 시나리오상, 음악상을 쓸다시피 휘어감았다. 지금은 거장이 된 임권택 감독도 1978년에 배우 한혜숙, 김희라, 이일웅, 김형자, 박원숙 등이 출연한 ‘상록수’를 촬영했고, 비디오로도 출시가 되기도 하였다. 좥지난 6일 밤 교육방송 ‘한국영화 특선’에서는 임권택 감독의 칼라판 ‘상록수’가 김홍준(감독)의 해설과 함께 방영되기도 했다.좦
또 하나. 심훈이 전무하던 무용평을 썼다는 사실이다. 배구자의 무용비평(29년 9월)을 남긴 것이다.
식민지시대에 그녀는 신무용을 창조하고 민족무용사의 기초를 연 선구자로, 당시 최승희보다도 앞에 놓일만 한 인물이다. 악극이란 장르를 만들고, 무용연구소를 차리고 연극전문 동양극장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녀였다.
좥신상옥 감독이 만든 심훈 원작의 ‘상록수’가 오는 5월달에 열리는 제56회 칸영화제의 회고전에 초청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가 제일로 아낀다는 이 영화는 1960년 ‘춘향전’(최은희 주연)의 대성공으로, 홍성기 감독이 톱스타 김지미를 내세워 만든 ‘춘향전’과 맞불 경쟁에서 흥행에 성공함으로 아주 부담감 없이, 가장 순수하게 찍었던 영화였다고 회고했다.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