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손진동
심훈의 「상록수」는 동아일보에 1935.9.10~1936.2.15까지 연재됐다. 그의 소설에 삽화를 그린 건 젊은 시절의 청전 이상범(1897~1972)이었다.
당시 신문사 삽화가로 활동한 사람은 청전말고 심산 노수현, 김규택, 정현웅, 안석주, 구본웅, 최영수, 홍득순 등 몇 안돼 손에 꼽을 정도다.
삭정이 불타버린 재처럼 예전 예술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린, 재주만 믿고 기능만이 판을 치는 자본주의 상업시대가 도래한 작금에 그런 예인(藝人)들은 이제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다. 그들의 낭만적 기질이나 고지식한 아집, 끈끈하던 정을 이젠 구경할 수조차 없는 삭막한 시대. 예술혼은 사라져 탈색돼 버렸다.
그전 미술계에는 그쪽에서만 통용되던 ‘6대가’란 것이 내려왔었다. 우리 전통 화단의 대표적인 작가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의재 허백련(민족혼을 고집한 무등산 도인), 이당 김은호(채색 인물화로 일가를 이룬 어용화사), 심향 박승무, 청전 이상범(한국미를 구현시킨 산수화가), 심산 노수현(고도의 정신성을 추구한 이념산수화가), 소정 변관식(반항과 방랑의 황포노인), 이들은 한국 화단의 지도세력이자 작품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인기 작가들이기도 했다.(윤범모, 『한국 현대미술 100년』, 현암사)
청전이 좥상록수좦의 삽화를 그렸을 때는 38세와 39세였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1914년 서화미술회강습소에 들어가 조선의 마지막 대가였던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을 스승으로 만난다. 1926년부터 동아일보에 들어가 주로 미술담당으로 소설에 삽화를 그렸다.(36년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했을 때 사진을 수정한 일장기말살사건은 그의 붓끝으로 이뤄졌다. 당시 사회부장이던 현진건, 체육부기자 이길용 등과 함께 모진 곤욕을 치렀다.)
그를 칭송하는 말은 수도 없다. 소박한 우리 산수... 다시 보는 마음의 고향이라거나, 옛적 고향 마을... 가슴 저린 흙내음이라거나, 경쾌한 먹선... 정겨운 산천... 아, 내 고향이라거나. 그의 30주기 작품전이 2002년 10월에 열렸을 때 도하 각 신문들이 뽑아낸 제목들이 그렇다. 화면 가득 음계처럼 경쾌하게 떠다니는 짧은 점선의 붓터치, 그 뒤로 배경이 되어 흐르는 유현(幽玄)한 먹의 농담, 하나 둘 피어나는 정겨운 물길과 넉넉한 야산, 그리고 무심히 길을 걷는 촌부 한 두 명... 그렇게 따라다니는 수사만큼 시중에 나도는 그의 그림에는 가짜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나는 가끔 그런 꿈을 그린다. 그의 삽화를 모아 육당이 만들어 팔았던 ‘육전소설’모양 만들어 오늘의 상업주의와 대뜸 맞닥뜨리고 싶은. 우리네는 20·30년대 소설의 삽화, 특히 화가가 그린 삽화도 학문적으로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된 푸대접을 받아왔다. 삽화는 다만 허접쓰레기란 뜻이겠다. 오늘날 교육방식의 잘못이 크다. 고급과 저급의 차이 같은, 그리고 되먹지 않은, 그런 갈라서기의 이론은 우리가 급히 청산해야 할 것들이다.
연재분 소설 「상록수」의 1회부터 6회분을 선보인다. 동혁의 얼굴은 2, 3, 4회에, 배시시 드러나는 영신의 모습은 5, 6회에 등장한다. 청전은 할 일 많은 청춘이던 그들을 그렇게 그렸다. 그리고 덤으로 「상록수」의 제목 위에 그려진 소나무의 컷은 이채롭도록 아주 조선 맛을 늘씬하게 풍기는 자태다. 이것 하나가 「상록수」 전체를 꿰뚫고 있는 이미지의 중심이랄 수 있겠다. 청전은 「상록수」 초판본이 나올 때에도 책의 장정과 속지 그림까지 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