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에 불이 났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가 보니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타버렸더라구요.”
합덕에서 ‘대성오토바이’를 경영하고 있는 김현우(42)씨는 10년 전 이 곳에서 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 전에도 천안이나 충북 보은 등지에서 기사로 15년 정도 근무한 경력이 있는 김현우씨는 이쪽 계통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오토바이를 2층으로 쌓아 놓을 만큼 대규모로 장사를 했지만, 경기가 안좋아 1년 정도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화재사고까지 겹쳤던 것이다.
당시 이 곳을 경영하고 있던 사장이 한 가지 제의를 해왔다. 아예 가게를 인수해서 경영할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인수를 결정한 것이 4개월 전의 일이다.
김현우씨는 슬하에 1남2녀를 두었다. 윤미(중2)·세령(중1)·태권(초2) 아이들 모두가 착하고 공부도 꽤 잘하는 편이다. 이 아이들을 생각하며 김씨는 불편한 몸이지만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경기가 좋지 않아 일거리가 많지 않지만 이럴 때일수록 고객에게 더욱 친절하게 다가선다.
오토바이 고쳐달라고 전화하는 손님들이 오는 길에 다른 것도 사다 달라고 하면 기꺼이 심부름을 해준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고장난 농기계나 샘 모터, 보일러 등 지나가다가 고장난 것이 있다고 하면 기꺼이 고쳐주고 오는 김현우씨는 다들 부모님같은 분들이라고 말한다.
“농촌에 노인들만 남아 힘들게 농사를 짓는데 그것도 안해주면 안돼죠.”
고쳐준 값을 절대로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분들은 텃밭에서 기른 콩이나 찹쌀을 주며 고마움을 대신한다. 기계에 대해 잘 모르는 대부분의 농촌 노인들에게 김씨의 배려는 큰 도움이 된다.
세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김현우씨는 양쪽 다리가 불편한 3급 장애인이다. 합덕에 와서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불편한 다리로 인해 커브를 돌 때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어서 넘어진 것이 몇 번, 김씨는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이 직접 세발 오토바이를 만들어서 일을 다녔다.
그런데 ‘대성오토바이’를 인수하고 나서부터 이것도 여의치 않았다. 장거리 출장을 위해서는 자동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면허를 딸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운전면허 시험을 봤는데 다행스럽게도 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됐다. 평소 이웃사람들에게 신망을 얻고 있던 김씨에게 타지 않고 있는 차가 있다며 올 1월에 면허가 나오자마자 선뜻 차를 내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대성오토바이’를 찾아갔을 때 김현우씨는 그 차를 정성스레 세차하고 있었다. 반질거리며 윤이 나는 차를 보고 있다가 발견한 손, 세상 여파에 시달려 마디가 굵어진, 나무에 박힌 옹이처럼 슬픈 응어리를 움켜쥐고 있는 듯한 김현우씨의 손이 한참동안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을 그의 생...
내가 온통 흐느끼는 나뭇가지 끝에서
다가갈 곳 다한 바람처럼 정처 없어할 때
너는 내게 몇 구절의 햇빛으로 읽혀진다
가슴 두드리는 그리움들도
묵은 기억들이 살아와 울자고 청하는 눈물도
눈에 어려
몇 구절 햇빛으로 읽혀진다
불 꺼진 하얀 네 손바닥
햇빛 속에서 자꾸 나를 부르는 손짓
우리가 만나 햇빛 위를 떠오르는 어지러움이 된다면
우리가 서로 꼭 껴안고서 물방울이 된다면
정처 없는 발자국 위에도
꽃이 피어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리
장석남 「불 꺼진 하얀 네 손바닥」
김현우씨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4년전 아내(윤희진, 39)가 백혈병으로 누워있을 때였다.
어려운 살림에도 처갓집 식구들을 모시며 구김살 없이 꿋꿋하게 생활하고 있던 김씨에게 하늘은 가혹했다. 장모가 폐암말기 판정을 받자 김현우씨는 그동안 모아 둔 돈에 적금까지 해약해서 병원비를 마련했지만 끝내 숨을 다하고 말았다.
이 때부터 김씨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가장 가혹한 시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장모의 병수발을 들던 아내가 쓰러진 것이다. 작은 멍자국이 몸에 생기기 시작해 나중에는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상을 당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터라 김씨 대신 동생들이 아내를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얼마 뒤 동생에게서 온 전화를 받은 김현우씨는 가슴 속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일주일밖에 살지 못한다며 아내를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으로 주저앉은 김현우씨, 그러나 정신을 차려 그 길로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간호사로 일하는 여동생을 통해 간신히 병원에 입원시킬 수가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아내의 담당의사는 우리나라에서 백혈병 치료의 권위자로 이름이 나 있던 사람이었다. 일년 정도의 입원기간 동안 아내는 치열하게 병마와 싸웠다. 10%밖에 남지 않은 정상세포를 이용해 자가골수이식을 하고 꾸준한 항암치료를 거쳐 극적으로 병을 이겨냈다. 큰 병일수록 환자 자신이 살려는 의지가 없으면 완치되기 어렵다고 한다. 평소 아내의 활발한 성격과 살려는 의지는 백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지금도 아내는 4개월에 한번 병원에 간다. 재발만 안하면 완치된 거나 다름이 없는 몸이지만 김현우씨는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 5개월 쯤 전부터 아내가 직장을 나가기 때문이다. 거듭 찾아왔던 불운은 아내마저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다. 건강을 생각해서는 일을 다니지 못하게 하고 싶지만 “힘 합쳐서 열심히 살아보자”는 아내를 김현우씨는 끝내 말릴 수가 없었다.
“나같은 사람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했죠. 그 몸으로 일을 나가는 걸 보면 가슴이 아파요. 내색은 않지만 많이 힘든지 살이 많이 빠졌어요”라며 김현우씨의 얼굴이 일시 굳어진다.
동네에서도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난 터지만 아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너무 고맙다고,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그러나 그 말, 쑥쓰러워서 그저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산다.
극한의 어려움까지 이겨낸 두 사람, 이 부부가 서로의 마음 꼭 껴안고 물방울이 된다면 힘겹게만 걸어 온 그들의 발자국 위에도 꽃이 피어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리라. 불 꺼진 하얀 그들의 손바닥, 서로에게 힘을 주는 몇 구절의 햇빛으로 읽혀져, “너무 고맙다고, 너무나도 고맙다고” 마음 속으로 자꾸만 되뇌이는 것이다.
이필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