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동 소설가

천풍 심우섭은 개화기 무렵에 소설가로 활동했다. 그가 쓴 신소설로는 침상유각(枕上有覺, 장학월보 1908. 3), 몽각(夢覺, 장학월보 1908. 5), 형제(매일신보 연재. 1914. 6.11~7.19 33회), 주(酒, 매일신보 1914. 9.9~16), 장편소설로는 산중화(山中花, 매일신보 1917. 4.3~ 9.19) 등이 지금껏 알려진 정도. 그 당시 배웠다 하는 우리나라 인텔리들 모두는 신문사로 모여들었다. 마땅히 다른 데로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3.1운동 이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민간신문이 허가될 때까지는 조선사람으로 신문기자가 되려면 좋건 싫건 간에 친일신문이던 매일신보에 취직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상협, 조일제, 홍목춘, 민태원, 백대진, 유광렬 등이 다같이 초창기 매일신보 출신 기자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915년 이후부터 매일신보에 있으면서 천풍은 20년대엔 지방부장을 거쳐 경성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이 방송국은 1927년 2월16일 개국이 되어 32년 4월7일부터는 2중 방송 실시로 기구를 개편하고 조선방송협회로 개정을 하는데 33년 4월26일부터 제1방송은 일본어 방송으로, 제2방송은 한국어 방송으로 독립을 하기에 이르른다.

천풍은 20년대에 매일신보 지방부장을 거쳐서 30년대에 경성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제2방송 과장으로 1937년 2월19일~1939년 8월30일까지 근무하고 41년 8월부터는 다시 매일신보로 돌아가 편집고문으로 재직하기에 이른다(심훈이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경성방송국 문예담당으로 입사했으나 사상문제로 그만둔 시기도 1931년 바로 그 무렵이니 ‘의미심장’할만도 하다).

그의 소설 ‘주(술)’는 식민지 지식인의 분열된 의식을 단초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허풍선은 학교 교사, 기자, 소설가를 전전하는 자로 당대 신학문을 익힌 지식층이었다.

그런데 그는 술의 유혹으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못해 술 때문에 직장도 번번이 잃게 된다. 그 허풍선이 술에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시대의 암울함에 대한 불평 때문이며 희롱으로 세상을 살고자 하는 태도와 연결돼 주정의 도를 넘는 것이다. 주인공이 술에 취해 거리의 여자와 밤을 새고 경매소에 자기 세간을 팔아 유흥비로 탕진한 뒤 신세를 한탄하며 자살에 이른다는 결말에서 그것이 모두 주인공의 꿈이었다고 함으로써 계몽적 의도를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한국근대민족문학사, 한길사)

1921년 11월에 영창서관에서 나온 신소설인 「형제」를 보기로 하자. 이 소설은 전광용, 송민호, 백순재씨가 함께 엮은 “한국신소설전집” 제8권(을유문화사 1968)에 들어 있다.

이 소설은 1-유언, 2-비애, 3-소설, 4-털외투, 5-자백, 6-아우의 대신, 7-혁낭, 8-용력, 9-진경희, 10-경희의 소청, 11-출세의 단서, 12-하희, 13-제의 호운, 14-형의 호운, 15-오영자 (......) 64-치남, 65-금의환향 등으로 나누어 구성된 현재의 중편소설쯤 되는 분량이겠다.

소설의 주제는 아우를 위해 형인 저의 한 몸을, 희생을 무릅쓰는 ‘형제애’라고 할까. 사건의 흐름도 짜임새 있게 전개시켜 나가는 것이 오늘날과 흡사하게 똑같은 구성법을 따르고 있다.

천풍 심우섭은 베일에 너무 가려진 부분이 많아 시간품을 많이 들여야 지난 모습을 조금이나마 복원할 수 있겠다는 직감과 함께 조급하지 않게 다가가리라. 어쨌건 언론인이던 천풍 심우섭은 아우인 동생 심훈의 일기에서도 고민이 나타난 대로 ‘친일’한 자의 그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큰 자국을 남긴 사람이었다.

(다음회-심영섭과 ‘근원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