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동 소설가
사진설명 1 : ▶심영섭이 동아일보(1929년 8월) 학예민에 연재했던 ‘아세아주의 미술론’ 1회분
사진설명2 : ▶ 열화당에서 나온 근원 김용준전집 1권인 『새 근원수필』(2001년)
사진설명3 : ▶김용준 선생의 『근원수필』.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책으로 장정도 그가 직접 꾸몄다. 뒷표지에는 광개토왕 청동 호우의 명문 탁본이 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경북 봉화 시골에서 농사 짓고 사는 고집쟁이 전우익씨가 쓴 얇은 책제목인데 상업자본과 매스콤 때문에 ‘뜨고’ 있는 형편이라지 아마. 그건 오래전인 93년에 나온 책이고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니까”, “사람이 뭔데”로 이어진다.
그가 사시사철 벗하며 사는 책이 바로 저 근원선생의 “근원수필(近園隨筆)”과 또는 수주 변영로(卞榮魯)선생의 “명정(酩酊) 40년-무류실태기(無類失態記)”쯤이란 걸 알았지만, “근원수필”을 읽어가기엔 똑참한 봄밤은 흘러갔다. 요새 다시 나온 그의 전집엔 뭐 ‘우리 근대기 지식인이 쓴 우리 삶’이나 ‘한국 수필문학의 진수’니 하는 성찬이 차고도 넘치게 붙어다닌다. 수주 선생의 책도 그러하-고. 그러나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글맛에 듬뿍하니 빠져서는 요즘 책은 비교도 안되는 서푼어치라는 걸 깨달을 것이다. 어디 책이라고 다 책인가.
그러나 미술사학자인 그의 글을 읽어가노라면 그 단아한 문장 속에 우리네 정서가 고스란히 스며 있음을 깨닫고 빠져들게 되리라. 내게도 술 이야기로 한 평생을 젖어 산 수주의 ‘명정 40년’과 작은 문고판형 ‘근원수필’ 복각본을 구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몇 문장을 옮겨보면 이러하다.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에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수묵 빛깔로 퇴색해 버린 장지 도배에 스며드는 묵흔(墨痕)처럼 어렴풋이 한두 개씩 살이 나타나는 완자창 위로 어쩌면 그렇게도 소담스런, 희멀건 꽃송이들이 소복한 부인네처럼 그렇게도 고요하게 필 수가 있습니까. (‘매화’, 중에서)’
봄날의 성찬이면서 요즘과는 도시 다른 단아한 정감이 스르르 다가옵니다. 그러다 ‘생각나는 화우들’를 읽게 되었는데 눈이 커다랗게 떠지는 거였다.
‘...서화전협회에서 이채를 띤 작가로 심영섭(沈英燮) 형은 사상적으로 니힐리스틱한 경향을 가지고 아르치파셰프의 ‘사닌’과 ‘노동자 세위리요프’를 탐독하고 또 ‘도덕경’을 읽고 불교에로 기울어지더니 인생에 대한 극단의 회의를 품은 채 그의 향리인 충남 당진으로 내려갔는데, 작품은 물론 손을 뗀 모양이요 벌써 십오륙 년 전 내가 병으로 신음할 때 잠깐 만나 보았을 뿐 그후 영 소식을 들을 길이 없다. 만나고도 싶거니와 화우로서의 가장 이별하기 싫은 친구다.’
‘영섭’은 심훈의 일기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1920년 1월 19일, 21일, 25일치 일기에 나온다. 또 “당진의 인맥”(김홍선편, 1993)의 심재영 편에 ‘심화섭의 형님이신 심영섭씨가 서울 관훈동 28번지 한집에 있어......심영섭씨는 동경미술대학을 졸업했고 서양화(유화)에서 동양화로 기울어 자기류의 화풍을 창립해 천도교기념관에서 전시회도 가졌던 분으로 (심재영이)시골에 내려오기 전 같이 있다 나중에 부곡리로 내려왔다. (영섭은)중흥리 새장터에서 4년을 살았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인 1928년부터 1932년까지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전성기였고 좌익언론과 문인들이 저널리즘을 장악한 때라 영화사가인 이영일씨(1931~2001) 지적처럼 ‘인텔리층 사이에 일종의 유행’처럼 근대 형성기에 번져 나갔던 것이다.
20·30년대 근대미술사, 일본 유학파의 기록을 더듬어 봐도 그의 흔적은 도무지 나타나지가 않았다. 다만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의 미술목록에서 최열이 쓴 미술평론 속에서나마 여러 개를 찾을 수가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메일이 왔었다. 바로 ‘화가 심영섭’에 대한 답장이었다.
‘심선생은 당진 출생의 작가로 유화 및 수채화의 작품활동 뿐만 아니라 동양예술론에 대한 평론을 한 근대 미술작가입니다. 작품이 없어 정확한 출생, 작고연도와 자세한 활동경력을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근원 김용준 선생과 가까운 벗으로, 23년에 창립된 고려미술회의 고려미술원 에서 교육을 받았고, 1928년에는 녹향회(綠鄕會) 창립동인으로, 동미회, 서화협회전에서 활동했습니다. 당시 서화협회전에 출품한 ‘계류’, ‘정물’, ‘동대문 외에서’등은 작가로서 큰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그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평문 ‘아시아주의 미술론’(동아일보 1929년 8월 21일~9월 7일 연재분)의 흔적을 찾아 선보인다. 근원선생과의 예술관이 비슷할만치 미술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기도 한 평론이다.
근원 선생의 수필은 근래에 다섯 권의 전집으로 나왔는데 그 중에서 “새 근원수필”은 글맛을 찾아 읽는 목마른 사람들을 다독거려 주고 있다.(화가 주경 연보에는 ‘1923년- 구본웅, 심영섭은 미술동우회를 만들어 고희동과 이종우의 지도를 받았다’고 남아 있었던 거다.)
다음회-조각가 이국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