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처럼 생각했던 사람이 떠나갔다. 그러나 그를 위해 슬퍼하기 보다 그를 잊기 위해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떠나간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가지의 길이 있다. 어떤 길을 택하든 어려움이 없는 곳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주저앉아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슬기롭게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당진고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한성아파트 경비실에는 감당할 수 없을것만 같은 큰 슬픔을 뛰어넘고 남은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곳에서 2년 전부터 근무하고 있는 고경성씨(61)가 바로 그 사람이다.

고경성씨가 군대에 간 것은 25살때다. 김해 공병학교를 나와 강원도 홍천으로 배치를 받은 그는 남들보다 늦게 군대에 가는 바람에 고생도 많이 했다. 고씨가 27살 되던 해, 군부대 근처에 있던 가게집 주인 할머니의 주선으로 한 아가씨를 만났다. 당시 열아홉살이었던 그녀가 지금의 아내다.

그 후 두 사람은 군에 있는 1년 동안 교제하다가 고씨가 제대한 후 강원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진으로 내려온 그를 기다리는 것은 높고 험난한 생활고였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실패하고 남의 집 고용살이를 시작하게 됐다. 타고난 성격이 성실한 그는 2년동안을 꾸준히 일해 농사지을 밭을 사고 분가를 했다. 결혼 후 슬하에 2남2녀를 두게 된 고경성씨, 배운 것도 없고 넉넉한 살림도 아니었지만 아이들 만큼은 훌륭히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운명은 가혹했다. 학사장교로 군대에 간 큰아들이 훈련을 받던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대위 계급을 달고 중대장으로 발령나기 13일전의 일이다.

고경성씨는 아들이 오랫동안 객지생활을 했던 터라 죽은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곳에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명절 때면, 언제라도 대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아들, 아버지의 건강을 생각해서 술을 끊으면 차를 사 드리겠다고 했던 효자 아들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8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고경성씨, 쓰라린 아픔을 묻어두고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그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슬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아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밝게 살려고 노력한다. 쉬는 날이면 아들이 사 준 차를 타고 자주 아내와 함께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나간다. 덕분에 동네에서는 잉꼬부부라는 소리도 덤으로 듣고 산다. 이렇듯 고씨가 가족들에게 신경을 쓰는 건 아직도 텔레비젼에서 군대 얘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라고 말하며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가파른 산을, 마치 평지를 걷듯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그에게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엿보인다.

4개 동 298세대를 돌보고 있는 고경성씨, 가끔 곤란한 경우도 생기지만 더 큰 산을 넘은 그에게는 작은 일에 불과하다. 출근시간에 빠져나가는 차로 복잡한 단지 내에서 교통 정리도 해 주고 주민들이 불편해 할 일을 미리 막으며 묵묵히 자신의 슬픔을 속으로 삭여내고 있는 그의 삶이 아름답다.

이필용 기자 pylee@dj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