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1 : ▶화성에 살 때인 장남 첫 돌 무렵의 이문구 선생(1978)

사진설명2 :▶서울대학교 손낙범교수가 풀이한 박씨부인전(1956)

사진설명3 : ▶남정현 첫 창작집 『너는 뭐냐』(1965)

사진설명4 : ▶이종구의 그림 “대호방조제에서-아우”(1986)

명천 선생님. 환장하다 싶게 좋던 봄밤에 ‘공산토월(空山吐月)’을 다시금 읽었고 그리구 나니 예전 잡지에 났던 경기도 화성에서 살던 때의 ‘행정리 205번지’ 제목이 확연스레 떠오르는 거였습니다.

내 문학의 길에 모시는 사부는 없는 터에 선생님 소설들은 제 길을 한결같이 확장시켜온 큰 문학이었습니다, 소설 ‘오자룡’이나 ‘매월당 김시습’은 빼구 말이쥬.

벌써 날은 여름속으로 치닫고 있네유. 거기서두 여전 잘 계시지요. 구차한 세상의 연을 끊고 가셨으니 아무래도 여기보다는 행결 편해야 된다는 게 좁아터진 소견입니다만 ‘다른 빚은 내 가슴속에 묻고 평생 곱씹을 터이지만 그 짐승 같은 시절에 외가나 친가에 한 명도 목숨 잃은 사람 없는 내가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들까분 것이 동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너무 부끄러워 나는 그 앞에 옳게 나서지 못했다’고 김선주씨가 쓴 ‘캐딜락을 타고 떠난 사람’도 선뜻하니 떠오르네요.

개것 암것두 아녀, 라면서 당신은 게갈 안 나는 소리 작작하라고 호통을 칠 일들이 지금 고향 바닥에는 부지기수입니다. 가령 감자 수넹이 잘릴까 봐 그 밑을 꼭 잡고 끌어댕기면 우르르 딸려나오는 감자알처럼 내 사는 곳과 연관된 문학이나 예술이 줄줄이 나오더란 말입니다. 말이죠,

안회남의 ‘섬’이나 (민태원, 윤곤강, 남정현은 접더라도) 박용래, 이근배들의 시, 최일남의 ‘때까치’, 김승옥이 쓴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든 ‘안개’(김수용 감독), 조선작의 단편 ‘성벽(城壁)’에 개도둑이며 개백정인 아버지 고향은 당진 바닷가의 매풍리인데 살다 서울로 이사를 간다 말입니다.

한국일보 신춘에 시 ‘물노래’의 임문혁과 김진경의 시편들, 화가 이종구가 그린 그림중엔 정치선거판을 묘파한 게 있고, 송악고에 머물렀던 소설가 이혜경도 있고, 소설 ‘애기 소나무’의 김찬기도 있고, 97년 평론 ‘오규원론’으로 신춘에 당선해 활동하는 최현식,(또 우애령의 ‘당진 김씨’도 있고). 이명랑 소설 “삼오식당”엔 유아독존의 여주인인 당진상회 할머니가 영등포 수산시장통에서 버럭버럭 소릴 질러댑니다. 신예 심윤경이 쓴 “나의 아름다운 정원”엔 동구 엄마 외가로 할아버지의 육촌 동생(현동이 할아버지)이 당진에 사는 누님댁 혼사에 갔다오다 사온 대가리가 꿰어진 이상한 물건에 대해 한바탕 벌어지는 회화가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요. 그게 바로 낙지란 놈입니다.

경성고보 동창이던 심훈이 박헌영(朴憲永)과 철필구락부 급료인상 투쟁하다 함께 동아일보사를 퇴사했고(25년 5월) 그를 모델로 삼은 시 ‘박군의 얼굴’이나 소설 ‘동방의 애인’, 또 어린 시절 이쪽에서 유랑했다는... 그의 고향은 예산이기도 해서 연구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곧 전집이 나온다는군요.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당진학’을 이룬 두툼한 삶이자 문학이고 또 역사였다고 여깁니다. 오죽잖은 삶 나날에 권력, 돈과 명예, 행정과 주민... 같은 류들이 갑론을박하는 이 당진 바탕 방식의 희망은 그게 바로 지방자치라면 차라리 초등학교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겁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소설 ‘장척리 으름나무’에서 따옵니다.

‘자네두 시방이 문민시대라구 허는 것은 알구 있지? 그러면 문민시대라는 것은 뭘 허는 시대여? 톡 까놓구 말해서 무단시대에 미섭구 겁나서 찍소리두 못 허구 당했던 사람덜이 당헌 것을 당헌 만침씩 갚어나가는 시대다 이거여. 안 그려? 나두 그때 그 인간이지만, 국회의원두 그때 그 인간, 군수두 그때 그 인간, 과장 계장 주사 급사늠할래 말짱 그때 그것들이 자리만 일루절루 겨댕기메 그냥덜 해먹구 있는디 왜 나만 당허구 살으야 헌다나? 안 그려? 그까짓 흙몸대기 좀 덜어쓰구 사는 거, 갱깃찮여.’

그런 고향에서 산다는 거, 신물날 고행이 아닌가요? 거시기 출세했다, 성공했다는 의미가 단 한번 뿐인 생애에 뭐가 그리 대수인가요. 그래도 여전 문화는 저기 서울 편향이구 서울 예술이 전국을 지배하는 유통구조와 교육을 통한 세습적 부(富) 양산 방식의 딜레마, 드디어는 예술문화도 잘만하면 ‘뜨는’ 천금을 만질 수 있는 투기성 작목으로 둔갑하고 ‘OO아, 너 혼자만 다해 먹어’라 해도 OO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진경이 그야말로 현실이지유.

제도권 예술은 대중과는 거리감을 자아내 아직껏 즐기기엔 사탕발림이 묻어나는 행사치레시대. 이제 그건 손장난 기술주의에다 고뇌스런 열정은 식은 채 덤벼들어 졸업장을 향하며 사설학원에서 교습하는..., 예술행위에 보안법 칼로 마구 재단하던 웃지 못할 지난 우리나라의 희극시대, 그런 사이 새천년-구습적 삶을 버리고 모든 분야에 새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치환해야 하는 시대에 막상 주류와 비주류, 중심과 변두리의 충돌여파-그 혼돈이 있는 사이 자본주의의 논리가 속도전으로 쳐들어오고, 개인의 욕망을 급하게 채우기 위한 소비와 더불어 과시가 무슨 생활인 양 버젓이 횡행댑니다 그려.

그러니까 우리 전통의 겸양이나 인내, 자기 정진 같은 자세의 공부는 그것 앞에서는 잔인할만치 아주 몹쓸 꼴이 되고 곧장 후회의 그림자를 거느리게 되고 소외됩니다. 버팀목도 없지요. 대중매체에 나오는 인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진정 존경받는 시절이잖아요. 아시잖아요, 선생님.

여기 지역환경도 힘의 논리가 유장 세월 흘러온 건 말할 것두 없고 지금도 그렇지만 자각하는 자가 늘어나야 청산될, 분명한 숙제지요. 모두 방기하다시피 하고 오히려 거기에 합류하려 손뻗고 발버둥쳐댑니다.

지역이라는 데가 교양을, 지식을, 문화를 합리성과 개성보다는 정치적 이유와 실적이 중시되는 허울 속에서 오랜 세월 갇혀져왔으 며 이제는 거기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생각도 다양하게 존중하는 것에들 공부를 해야지요. 어느 지역이든 ‘끼리끼리’에서 유연하게 터져 나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명천 선생님. 다양성만큼 건강한 보약이 이 세상에 또 있을라나요?

어떻든 이제껏 말한 속에 자신이 해야 할 일들과 ‘지방분권’으로 해야 할 것도 있고, 또 요원한 일도 있나 그럽니다.

무관심이란 큰병도 있고 중구난방의 마음을 투닥이는 곪은 교육도 우리 정치가 국민에게 진짜 머슴으로 거듭이 날 때, 아주 빳빳한 정치 권력이 온갖 행태를 자아내던 상전의 논리가 내려앉을 때만이 흐름 꺽여 흐르던 시냇물은 자연히 제 자리로 돌아갈 겁니다. 원론이 아닌 막바로 실천이쥬. 그래야 쓸개 있는 인재들이 줄곧 고향을 사랑할 터이고 그 이치들을 서로가 존중할 겁니다. 짧은 인생이니까요.

명천 선생님, 이리 쓰다보니 아주 꼴사나운 편지가 되었네유. 산다는 게 본시 시끌벅적한 노릇인 걸 줏대 있이 한 평생 일군다는 게 필경 ‘일년 농사’에 비유되곤 하는 우리네 삼삼한 얘기지만 산다는 건 버겁고 사는 일에 즐거움이 없으니 어련한 농사겠나요? 마치 선생님의 소설들처럼. 그렇듯 끝장이 맺어질 일도 아니구요.

부디 편안히 몸 누이세요, 명아주 한 포기처럼요. 산 사람 일은 산 사람들이나 실컷 침튀기며 공방하는 계산을 한다 해도 그게 바로 산 거고 되레 생산적인 거니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