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산다. ‘나는 꿈이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그 꿈이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기에 애써 자신의 마음 속에 깊숙히 숨겨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꿈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고, 나름대로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다.
김태선(30)씨는 쉽지만은 않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대에서 오페라 공부를 하던 김태선씨는 얼마 전 졸업과 함께 귀국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이 생각만큼 만만한 일은 아니더라고 말하면서도 김태선씨의 얼굴에는 희색이 돌았다.
“변성기가 왔을 때는 많이 당황했어요”
김태선씨는 어려서부터 성악을 동경하고 있었다. (송산 동서교회 김중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음악을 자주 접하며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성악가가 되기 위한 꿈을 키워왔다.
“변성기가 왔을 때는 많이 당황했어요” 고음도 나오지 않고 목소리도 바뀌어 김태선씨는 많이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음악선생님과 상담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성악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러나 지나친 걱정이었다. 변성기가 남자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지금 목소리로 성악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서야 안심했다는 김태선씨. 그는 어려서부터 성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오페라의 매력
오스트리아에서 오페라 공부를 하고 귀국한 김태선씨는 오페라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페라는 성악과 연극의 만남입니다. 이 밖에도 미술, 의상 등 여러가지 분야를 포괄하는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죠. 한 작품에서 역을 맡으면서, 전체의 일부로서 내 역할을 소화해 낸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 하나의 극을 완성시켰다는 그 느낌이 참 좋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에는 오페라과가 없다. 김씨는 성악과에서 오페라를 배우긴 하지만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없어 아쉽다고 말한다.
성악을 전공한 김태선씨가 오페라를 공부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연극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성악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아마 연극을 했을 겁니다.”
유학가기 전에도 틈나는 대로 연극을 보러 다녔다는 그가 오페라 공부를 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마치 내가 호접몽을 꾼 듯 했죠”
김태선씨는 오스트리아에서 비인현대오페라단의 일원으로 4~5차례 공연을 했다고 한다. 이때마침 이 공연을 본 윤이상 연구소에서 한국에서의 공연을 제의했다.
윤이상은 동백림 사건으로 독일로 망명해 활발한 작곡활동을 하다 결국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유명한 작곡가다. 윤이상 작곡가를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인 통영에서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린다. 김태선씨는 이 음악제에서 「나비의 미망인」이라는 작품에 출연해 ‘장자’ 역할을 맡았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고 나서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데서 나온 ‘호접몽’.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유명한 말이다. 김태선씨는 공연하는 동안 마치 내가 호접몽을 꾼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작품은 우리나라 작곡가의 작품이지만 독일어로 되어 있다.
소리가 노래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나라 성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태선씨는 겸손했다.
“아직까지 배운 것보다 배울 것이 더 많은데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어요. 다만 제가 경험했던 일을 말씀드리죠.”
처음 비엔나 국립음대에 들어갔을 때, 김태선씨는 기교가 좋아 교수들이 특별히 잘 해주었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에 대한 관심은 차츰 사라졌다고 한다. 김태선씨는 그 이유가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낸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음악적 수준은 높은 편이지만, 유행에 민감하고 기교에 너무 치우치는 경향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 자신의 경우도 기교에 매달리다 보니 제대로 된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라 단지 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소리는 노래의 중요한 재료이지만 노래의 전부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김태선씨는 표현에 너무 신경쓰다 보니 가사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청중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성악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깨달음 하나를 얻은 셈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성악을 가르쳐 주었던 릴로바 선생님을 가장 존경한다는 김태선씨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음악활동을 할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예술혼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우리나라를 무대로 펼쳐질 김태선씨의 힘찬 비상을 기대해 본다.
이필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