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개 충

고대면 항곡리 출신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아무리 나무가 조용하고자 하나 휘몰아치는 바람이 가만 두지를 않고, 자식이 효도를 다하고자 하나 이미 부모는 돌아가시어 기다려 주지를 않는다’고 했다.

올해로 미수(米壽:88세)가 된 아버지께 그럴 듯한 잔칫상 하나 차려 드리질 못하고, 신경통으로 잘 걷지도 못 하는 엄마에게 약 한 첩 달여 드리지 못한 게 자꾸 맘에 걸린다.

삶이 구차하고 천하여 지게미와 쌀겨로 연명하며 고생을 함께 해 온 아내를 조강지처(糟糠之妻)라 했던가? 요즘따라 왜 이리 수선스럽고 마른 눈물 같은 슬픔이 자꾸만 목울대에 걸리는지…….

“박윤숙 환자 보호자 되시는 분 수술실 입구로 들어오세요.”

북적대는 환자 대기실 의자 모퉁이에 일곱 시간을 의지한 채, 기나긴 여정(餘情) 속을 헤매던 나는 갑자기 둔기에 얻어맞은 듯했다.

“염려했던 대로 임파선까지 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한 쪽 폐 수술은 잘 됐는데 치료 과정은 좀 더 세밀히 지켜봐야 되겠습니다.”

아! 무엇이 그토록 당신의 가슴을 까맣게 타들어가게 했나요.

26년 전, 친구한테 용돈까지 받고 선보러 나간 자리에서 시작되어, 그 해 우리는 큰애를 얻었지요. 벌써 큰애가 대학원에 들어가 조교 강습을 받게 되었고, 둘째도 이번 학기 등록금을 건넸으니 한 해만 더 견디면 대학 졸업인 것을…….

어디 그뿐인가요! 그 동안 이사 다니기를 밥 먹듯이 하며 주민등록 공란을 다 채워가던 지난 봄, 새 집 얻어 세간살이 새로 장만하고 문패 내건 지 얼마나 되었다고 대체 이게 웬일입니까.

“지금 상황은 3기 말입니다. 수술 경과는 좋습니다만 언제 재발(80%)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20%의 가능성을 놓고 그 어려운 항암 치료를 받도록 권장하기도 어렵고…….”

의사의 진지하고도 고뇌에 찬 언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잘라 내듯 말했다.

“그래도 20%의 가능성이 있다면 항암제를 맞아야죠. 본인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의사의 시선을 따라 컴퓨터 화면을 보는 순간, 마치 황량한 풍랑(風浪)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당신의 너른 가슴 가득 검게 보이는 것이 차라리 환상이려니 싶었습니다. 폐 하나를 잘라 내어 휑하니 비어 있는 그 공간은 무언가 소중한 보물을 지니고 있다가 가족에게 다 내어 주어 빈 창고처럼 쓸쓸하게 보였습니다.

퇴근길이면 어김없이 술집만 지범대는 남편 속 풀리라고 조석(朝夕)으로 끓여대는 해장국에 된장찌개, 삼복 더위에도 품위 지키라며 다려 주는 긴팔 와이셔츠, 그리고 돈 없다고 기죽지 말라며 철따라 변하는 유명 백화점 상표만을 고집하며 흰머리 뽑아 주던 당신…….

그런 당신이 저토록 가슴 아릴 때 시절같이 나는 어디에 한눈 팔고 무얼 했단 말인가.

개관사정(蓋棺事定:시체를 관에 넣고 관 뚜껑을 덮은 뒤에야 비로소 그 사람의 인간적인 가치를 알 수 있다)이라더니, 당신의 빈 자리가 그토록 큰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다른 환자들과 달리 항암제 독성을 견디지 못해 부작용을 일으켜가며 열네 시간의 사투(死鬪)를 벌이더니, 네 차례 중 한 차례는 용케도 견디어 냈습니다.

자, 어서 몸 추스리고 보신(補身)해 한 달 후 민머리에 예쁜 모자 눌러쓰고 체중 늘려 다시 와야지요. 이렇게 우리 네 식구는 스산하고도 육중한 대학 병원을 빠져나와 캄캄한 밤 하늘을 몇 번이고 올려다보며,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 같던 한강을 내쳐 건너 당신이 꾸며 놓은 보금자리로 돌아왔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