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약해진 몸으로 누워만 계셔도

딸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을꺼라고

「아버지」

손끝조차 움직이기 힘든 아버지가 누워계신 방안에서는 늘 냄새가 난다. 뭐라고 정의하기 힘든 묘한 냄새다. 들척지근한 땀냄새 같기도 하고, 텁텁한 입냄새 같기도 하고, 부엌 어느 구석에서 쉬어가고 있는 음식냄새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 모든게 뒤섞인 냄새인지도 모른다.

가족들 누구도 그 방에 들어서길 선뜻 내켜하지 않는다. 누워만 있는 아버지는 말조차도 잃어서 귀찮게 하지조차 못하는데도 그렇다.

가끔 아버지는 한밤중까지 깨어 계시는 모양이다. 코고는 소리가 유난한 양반이 너무 조용하다 싶어 들어가 보면 흐려진 눈으로 천장만 올려다 보고 계신다. 잠이 안오시느냐고, 목이 마르시냐고, 무슨 생각을 하시느냐고 물어도 흔들리지 않는 시선이다. 그럴때면 아마도 저 양반이 옛날 생각을 하시겠거니 나 혼자 짐작한다.

“아빠, 생각 나? 옛날에 우리 서울 살았을 때, 나 일곱인가 여덟인가 먹어서 막 학교에 입학했을 때인데 엄마가 아파서 일년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었잖아요 왜,

엄마가 없으니 아침마다 아빠랑 나랑 어린 동생이랑 전쟁 치르듯이 밥 먹고 씻고 옷은 입으면서 집을 나서곤 했잖아. 또 밤에는 병원에 가서 엄마도 돌봐야 하고... 그때 어느날 밤이었는데, 동생 재우고 나혼자 무서워서 불도 다 켜고 이불속에 누워있었거든. 그런데 아빠가 평소답지 않게 술에 잔뜩 취해서 돌아온거야. 어린나이에도 뭔가 눈치는 있었는지 난 그냥 자는 척하고 있었지. 아빠, 그때 그랬잖아. 내 얼굴을 커다랗고 지친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꺽꺽 울었잖아. 눈물이 몇 방울 내 얼굴에도 떨어져서 근질근질한데 나는 꾹 참고 계속 자는 척 했었지. 나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그랬어. 내가 아빠가 우는 걸 아는 척하면 안될 것 같아서 꼼짝도 안하고 있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었어. 아침에 아빠는 아무일 없는 듯 했지만 나는 아빠도, 아니 남자도 울기도 한다는 걸 알아버린거야. 그런데 그 눈물은 그 후로 오래도록 내가 아빠를 사랑하고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열쇠였어.

아빠, 걱정하지마. 나한테, 또 사위한테 미안해 하지도 말구. 난 그냥 아빠가 이렇게라도 곁에 계시는 게 참 좋아. 움직이시지는 못해도 아직 뭐든 잘 드시고 내 말도 알아듣잖아. 그렇지? 아빠도 내 얘기 들으면서 옛날 생각하시는 거지?”

벽에 기대 앉아서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아버지를 보면 어느새 눈을 감고 주무시는 듯 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아버지의 짧은 머리와 주름지고 탄력을 잃어버린 얼굴을 쓰다듬는다. 그러면 축축하게 내 손을 적시는 눈물... 나는 또 모르는 척 한다.

그렇게 나약해진 몸으로 누워만 계셔도 딸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을꺼라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길 바라실 꺼라고 생각해 버린다. 예순이 훨씬 넘은 연세이니 저절로 흐르는 눈물일수도 있을테지만 난 그냥 믿고 싶은대로 믿어버린다. 아버지의 정신은 맑고 명료해서 내말도 다 알아듣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당신 인생을 정리하고 계시는 중이라고 말이다.

환기를 하려고 열어놓았던 창을 닫고 아버지의 냄새나는 방을 나선다. 언젠가 집 안에서 이 냄새가 다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한밤중에 아버지 곁에 앉아 옛날 얘기를 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감기가 어렵다고 아주 짧게 잘라 쓰다듬으면 가슬가슬한 아버지의 머리도 만질 수 없는 날이 분명히 오겠지.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끌어당겨 냄새를 맡아본다. 들척지근한 냄새다. 늙고 병든 내 아버지의 눈물만큼이나 슬픈 냄새다.

참았던 눈물이 그제서야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