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엘리스 넬리스
엘리스 넬리스 감독의 은 일종의 퍼즐게임 같은 영화다. 물론 난해한 퍼즐로 두뇌게임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동유럽의 아름답고 탁 트인 풍광과 함께 한 가족의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어가는 과정이다. ‘무엇’을 얻는다는 것, 이것은 더 정확하게 ‘문제의 해결’과 ‘화해’를 의미한다. 평범한 가족 사이에 얽혀 있는 불만과 비밀의 실체들이 여행하는 도중에 조금씩 벗겨진다.
영화는 결국 화해의 종착지가 ‘사랑’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지만 영화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들은 무엇일까라는 문제는 관객에게 맡기고 있다. 따라서 비밀을 밝히는 과정에 성실한 관객이라면, 스스로의 존재의미에까지도 천착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주스카는 불륜의 사랑에 빠져 있는 여성이다. 영화는 주스카가 애인과 정사를 벌인 뒤의 침실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가족 앞에서 다소 신경질적이고 특히 남편에게 더욱 그렇다. 그녀의 남편 파블레는 대책없이 착한 인물이다.
주스카의 언니 일료냐는 임산부인데, 일료냐의 ‘잘난’ 남편은 그녀를 “칠면조”라며 구박한다(이 남편은 영화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주스카와 남편 파블레, 일료냐, 그리고 두 자매의 어머니와 할머니, 덧붙여 일료냐의 아들 레오네와 레오네의 인형 ‘짜르’는 두 대의 차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물론 여행에는 목적이 있다. 죽은 아버지의 유골을 아버지의 고향인 슬로바키아로 가져가 장례식을 치르는 것. 그래서 이 가족들은 프라하에서 슬로바키아까지 여행 아닌 여행길에 오른다.
주스카의 남편 파블레는 단순한 캐릭터이지만 영화 속에서 큰 역할을 해낸다. 그는 타인의 ‘존재가치’를 상기시켜 준다. 남편으로부터 “칠면조”라 구박받는 일료냐에게 파블레는 “가장 섹시한 여성은 임신한 여성”이라는 말로 위로해준다. 또한 이름이 잊혀진 채 늙어버린 할머니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하지만 파블레는 주스카의 실존적 고민에 보다 근본적인 해결사 노릇을 한다. 주스카가 자신의 불륜을 고백했을 때, 파블레는 포용과 분노의 적절한 배합으로 그녀가 갖고 있는 고민의 실체에 접근한다. 그리고 주스카의 불륜은 흔히 그렇듯 자아의 불만족에서 비롯된 것임을 짚어낸다.
불륜의 비밀은 벗겨졌다. 그러나 아직 화해의 지점에 이르지는 못했다. 차안에서 두 사람은 다투다가 차가 뒤집히는 사고를 낸다. 두 사람은 무사했고, 동승한 할머니는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으나 아버지의 유골가루가 흩어져버리고 만다. 여기서 비밀 하나가 또 드러난다. 어머니는 그 유골은 아버지의 것이 아니라 난로 속 잿더미라고 고백한다. 결국 이 여행은 할머니의 고집 때문에 생긴 연극이라는 점이 드러나고, 가족들은 할머니가 아들을 핑계로 고향에 가 보고 싶어 한 것이라고 알게 된다.
비밀은 하나가 더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흐느끼며 ‘비밀’을 털어놓는다. 사고 지점에서 흩어진 유골가루는 아버지의 것이 맞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밀은 또 있었다. 어머니의 무관심에 대한 서운함으로 오랜 시간동안 딸들의 가슴에 켜켜이 쌓여 있던 것이 오해로 드러난다. 가족 애는 회복되고 화해는 대단원의 결말을 장식한다.
그러나 진짜 비밀이 하나 더 있었다. 일료냐의 어린 아들 레오네가 오줌을 누러 간 사이, 일료냐는 아들의 인형 ‘짜르’의 뱃속에 있던 먼지를 떨어낸다. 먼지의 실체는 자동차 사고 뒤 흩어진 유골가루 중의 일부를 넣어둔 것이다. 이 ‘비밀’은 관객만 알고 나머지 등장인물은 모른다.
레오네는 “할아버지는 짜르 속에 있어”라고 말하지만 가족들은 웃어넘긴다. 레오네의 ‘비밀’은 레오네와 짜르 그리고 관객만이 공유한 것으로 마감된다.
감독은 이 장면을 클렌징 자막이 올라가는 도중, 자막을 멈춰 세우고 삽입한다. 관객은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경쾌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모든 벗겨지지 않은 비밀은 관객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여행의 목적이며 동기가 됐던 아버지의 유골은 여행 중에 소멸됐다. 우리가 좇는 모든 목적하는 것들이 사실은, 목적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비밀’의 폭로 속에서 반대의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영화 은 여성들로 대변되는 모든 주체들의 내밀한 비밀을 벗겨내면서, 관객에게 무엇인가를 촉구하고 있다. 그것은 실존에 대한 자각을 통해 자신과 타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헤피앤딩의 장(場)을 말함이다. 관객이 말하는 비밀의 맞은편에는, 바로 이러한 의미의 ‘사랑’에 대한 통찰이 내재 돼 있다.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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