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 피어나는 대호만은 나의 추억이 묻어나는 곳이다. 중학교부터 당진시내로 유학해 큰 형님댁에서 자랐다. 당진중과 정보고를 졸업하고 나의 당진 유학생활을 정리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농업을 직업으로 택한 이후의 일이다.

지난 86년 개천절에 서울내기 아내(최미희, 44)와 고향땅에 둥지를 틀었다. 큰애 예슬(중3), 작은애 준헌(중1)은 나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는 소중한 녀석들이다.

첫번째 사진은 80년대 초반 동네 친구들과 대호만의 ‘반구바위’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의 비포장도로 질주하는 ‘폭주족’이었던 나는 스피드와 먼지, 바람을 맞는 것을 즐겼다.

두번째 사진은 나의 파랑새인 아내 최미희와 설악산을 여행했을 때 사진이다. 시골생활을 처음하는 아내는 처음에는 매우 어려워했다. 결혼 초에는 젖소를 사육했는데 시간이 없어 ‘각박했었다’고 늘 아내는 말한다. 지금은 벼농사를 3만여평 짓고 아내는 꽈리고추 를 재배하고 있다.

세번째 사진은 단국대 최고 경영자과정(유통)을 수료하고 찍은 사진이다. 앞으로의 농업은 유통을 혁신하는데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공부였다. 농업을 위한 투자는 우선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신념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네번째 사진은 어머니 생전에 아내의 생일모습이다. 어머니는 농사일을 모르던 아내를 한 농부로 만들어 주었다. 지금 어머니는 우리 곁에 없지만 어머니를 닮은 딸아이가 있어 그리움을 달래 준다.

사람들은 추억 앞에서 머뭇거린다. 추억은 바쁜 발길을 잡아주고 잠시 쉬게 해주는 시간의 묘약이다.

차 기 현 (46)  / 대호지면 적서리

당진군농업경영인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