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남은 자의 슬픔
- 지은이 : 박일문
- 출판사 : 민음사
- 가 격 : 7,000원
자판을 치는 내 손가락을 자꾸만 어린 아들이 장난을 친다. 18개월 된 아들이라 하지 말래도 자꾸만 장난을 친다.
나는 책 앞장에 구입한 날짜와 장소를 적곤 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구입한 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1994년 11월3일 학교구내 서점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제목만 봐서는 전혀 내용을 짐작하기 힘든 책을 구입하였다.
이 책을 그저 재미삼아 읽었던 10년 전을 기억한다. 무던히도 지루하던 시절, 내일에 대해서는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귀찮던 시절, 내 나이 20살, 대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한다. 그 때는 책 속의 ‘나’가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저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엔...
2004년에 나는 서른이 되었다. 서른이 되는 해에 나는 다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었다. 그리고 그 당시 철없던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며 읽지 않았나 생각된다. 서른이 된다는 것을 온전한 성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심야라디오 DJ가 얘기하는 걸 기억한다. 그렇다고 해서 서른이 되었다고 내가 온전한 어른이 되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책 속의 ‘나’가 얘기하던 아픔들이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책 속의 얘기를 하자면 주인공인 ‘나’와 두명의 여인 ‘라라’와 ‘디디’가 등장한다. ‘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고 변덕이 심한 편에 자신에게조차 애정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는 자살을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라라’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도 ‘나’의 어머니처럼 자살을 하고 떠나고 만다. ‘나’는 첫장에 너무나 무기력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러나 나는 스물의 나이에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이 세상이라는 넓은 들에 나가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것이 나다. 그러니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거나, 내가 무엇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냇가에 가서 나뭇잎을 띄운다. 나뭇잎이 아니면 종이배라도 좋다. 나뭇잎이나 종이배를 띄운 냇물은 흘러흘러 강물이 되고, 강물은 흘러흘러 바다로 간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았다. 냇물이 되거나 강물이 되거나, 뭐 그런 식으로 살아, 나는 바다로 나왔다. 그리고 당신들을 만났다.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들을.
이 소설속의 대단한 갈등과 묘사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나 또한 그런 맘으로 읽었으나 소설 속의 전개방식에 무척이나 놀랬었다.
나는 서른이 되어서 이 책을 다시 읽었다. 20살 때의 느낌과는 너무 다른 느낌으로 읽었다. 조금은 세상을 이해하고 다른 이의 삶에 대해서도 볼 수 있는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그러나 서른이 되었다고 지금 길 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길에 멈춰 설 수는 없을 것이다. 전에 와본 적도 없는 길에서.
다시 한번 이 책을 읽게 되면 또 어떤 느낌이 들까?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소나기가 내릴때마다 나는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소나기 내린 대지가 시원한 흙내음을 내뿜을 때 다시금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