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나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아는 아버지의 기억은 장례식날 아버지가 떠나는 것이 슬퍼 많이 울었던 장면뿐이다. 아버지의 기억은 그것이 시작이고 끝이었다.
가시고기라는 책을 4~5년 전 경찰학교에 있을 때 읽은 것 같다. 참 많이도 울고 싶었던 책이었다. 특히 아버지의 기억이 전혀 없는 나에게는 아버지라는 의미가 너무나도 아픔으로 다가왔다.
가시고기 소설속의 아이는 백혈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한다. 너무나 어린 자식의 아픔에 아빠는 홀로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한다. 자신의 장기를 팔아서라도 아이를 고치려고 노력을 하고 아이에게 좋은 약초를 캐기 위해 산속을 헤메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속의 아빠는 물속 가시고기처럼 새끼를 살리고 죽을 운명에 이르고 만다. 그의 희생이 너무나도 숭고하고 아버지의 끊임없는 사랑이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우리집 큰 아이는 3살이다. 언젠가는 자기가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얘기해야 할 터인데 이 녀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사실 큰 아이는 쌍둥이로 태어난 둘째 아이다. 첫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너무 약했다. 2kg에 못 미치는 몸무게에 심장에 이상이 있어 태어나자마자 유리상자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보름이 흘렀다. 새벽에 핸드폰이 울렸고 아내와 대학병원에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 두분이 많이 아픈 첫애에게 응급처치로 심장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아이의 눈가에는 하얗게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아팠으면 울었을까하는 마음에 나는 울음을 참았다.
몇 시간후에 우리 부부는 첫 아이를 떠나보냈다. 너무나 어린 아이를... 보름동안 살고간 우리 아이를 떠나보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아버지의 모습은 장례식장으로 가는 돌아가신 아버지였고 내가 처음으로 안아 본 아들은 보름만에 멀리 보내야만 했다. 나는 소설 가시고기의 아버지처럼 아이를 위해 노력할 시간도 갖지를 못했다. 내 아버지가 나를 위해 살지 못하고 너무 빨리 떠나셨던 것처럼.
쌍둥이 둘째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리고 작년 8월에는 세 번째 아이가 태어나 역시나 큰 탈없이 잘 자라고 있다.
나의 아버지도 내가 내 아이들을 사랑하듯이 나를 사랑했을 것이라 믿는다. 아버지도 나를 더 사랑 못하시고 떠나심을 슬퍼했으리라.
아버지가 되어서야 아버지가 나에게 주셨던 사랑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소설 가시고기의 아버지는 멀리 있지 않았다. 내 아버지가 가시고기 아버지였고 우리 주위의 모든 아버지들이 가시고기 아버지일 것이다. 항상 어버이날이 되면 하고 싶었던 특별한 말이 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