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이는 꿈을 먹고 살고 나이가 들면 추억을 곱씹어 보고 산다고 할 수 있다. 뒤돌아 보면 많은 시간을 논에서 살아 왔다. 내게 꿈은 논에 있고 추억도 논에 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농업은 생명산업이라는 명제에 찬성한다. 들녘은 농부로 평생을 살아온 내게 항상 땀을 요구했고 나는 온몸으로 답하며 살아왔다.
이런 내게 옆집에 살던 곱디고운 아가씨인 아내(유정자, 61)를 만난건 매우 오래 전 일이다. 한 마을에 사는 동생이었던 아내는 힘겨운 나날 동안 나를 지켜준 등불이었다. 그런 아내와 군에 입대하기 전에 약혼을 했고 제대 후 27살 되던 65년도에 결혼을 했다.
첫번째 사진은 당시의 늠름했던 나의 모습이다. 아내는 차분하게 올린 머리에 자주색 한복을 입은 참한 색시였다. 지금도 예쁘다고 자랑하면 어색할지도 모를 일이다. 마을에서 흥농계장과 이장 일을 보면서 다소 집안일에서 물러난 자리를 아내는 빈틈없이 지켜주고 있다.
두번째 사진은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모두 환갑이 넘은 농사꾼들이지만 만나면 즐겁기가 그만이다. 오른쪽이 합덕리 김희곤씨고 가운데가 원신흥리 조운규씨다. 어려서 뛰어 놀던 개구쟁이의 모습은 없어졌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즐거움을 주는 친구들이다.
세번째 사진은 결혼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이다. 예쁜 며느리도 얻고 집안에 활기가 생겨났다. 아들 종범(31)이와 며느리(이수정, 29), 그리고 아내 옆에 나를 제일 많이 사랑해 주는 딸 사라(33)다. 이제는 이 사진 속에 손자·손녀만 있으면 된다. 농부가 풍년을 꿈꾸는 것처럼 나도 할아버지가 되는 것을 꿈꾼다.
마지막 사진은 잔설이 묻어 있는 제주 종마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산시 선장에 있는 선산에 벌초를 다녀오면서 땀 흘린 나를 위로해 주는 아내는 여전히 옛날처럼 정겹다. 많은 사람들이 말에 타고 거의 같은 포즈를 취하는 것을 봤다. 그래도 내게는 단 하나 뿐인 추억이다. 앞으로도 아내와 함께 말을 타고 달리는 꿈을 꾼다. 나는 꿈이 있는 젊은 농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