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의 전면개방 속에서 유일하게 우리 농업을 지탱해왔던 쌀이 올해 WTO 재협상으로 완전개방의 위기에 처해 있다. 쌀은 우리 민족의 주요 식량이며 농업을 대표하는 작물로서 전체 농가 중 80% 가량이 쌀농사를 짓고 있다. 또한 쌀은 농가소득의 25%를 차지하고 농업소득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우리 농민들의 주요한 소득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6.9%이며 쌀을 제외하면 5%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적 가치를 떠나 농민들의 영농의지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작물인 쌀마저 무너지게 된다면 타 작물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져 우리 농업 전반의 몰락을 가져오게 된다.

지난 2월 미국 국방부도 비밀문서를 통해 “앞으로 20년 안에 급격한 기후 변화로 식량, 물, 에너지 자원확보가 커다란 안보위협이 될 것”이며 “이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 등으로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등 전 지구적 재앙이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과 기업을 비롯한 수입개방 찬성론자들은 값싼 농산물을 사다먹고 우리나라의 공산품을 파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며 쌀 개방을 당연시하고 있다.

쌀 개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 농업이 붕괴된 후에도, 쌀 생산기반이 파탄난 후에도 쌀값이 싸고 무한정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자국의 이익 앞에서는 전쟁도 불사하는 제국주의의 본질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냉혹한 원리조차 모르는 낭만적이고 순진한 상상일 뿐이다.

곡물은 생산량이 조금만 줄어도 가격이 폭등할 정도로 민감한 작물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곡물 수입량의 60%를 장악하고 있는 카길 등 세계 5대 곡물메이저들이 전세계 곡물 거래량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기반이 완전히 붕괴된 뒤에도 거대 곡물메이저들이 지금처럼 싼 가격에 쌀을 공급해 줄까? 우리나라는 냉해를 입어 쌀을 수입했던 1980년에 이미 평소의 3배 이상의 가격을 주고 어쩔 수 없이 수입했던 경험이 있다.

햄버거, 자장면이 아무리 맛있어도 우리 민족은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우리 농업이 붕괴된 뒤 곡물메이저들이 쌀 한가마에 백만원을 요구해도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울며 겨자먹기’로 수입할 수 밖에 없다.

식량에 대한 권리는 민족이 생존할 권리이며 국민이 굶지않고 살아갈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래서 식량에 대한 권리를 ‘주권’이라고 하는 것이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여 국정을 안정화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따라서 그 어떤 국제적 규약보다 우선하며 각 나라는 이에 대한 규제를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WTO 쌀 관세화 유예 협상은 우리나라의 식량주권, 식량안보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협상이다. 이번 협상에서 쌀 개방을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식량주권을 상실하고 곡물메이저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게 될 것이다.

우리 농업의 마지막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쌀을 지키기 위해, 관세화 유예 연장을 관철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쌀 개방 반대, 식량주권 수호를 위한 목소리가 드높다. UN인권위에서도 식량권 보호는 인권 차원에서 지적재산권 보호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쌀 수입개방의 문제는 단순히 수많은 농산물 중 한 작목을 개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식량주권을 유지하느냐 상실하느냐의 문제이다. 따라서 쌀문제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민의 문제이고 국가의 장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