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훌륭한 아들, 아들만큼 훌륭한 어머니
과연 사람들은 ‘가난이야기’를 좋아할까? 기사를 쓰기에 앞서 한 사람의 헌신과 노력이 빛이 바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직접 옷을 사 본지가 10년이 넘고, 7년이 넘게 도배 한 번 바꾸지 않은 집에서 오로지 자녀들을 위해 헌신해 온 사람. 정부에서 지원하는 16만원의 생활보조금까지도 절약해 아들에게 송금했던 주인공. 바로 고대면 진관리 최병(72)씨다.
최씨의 막내 아들인 손인준(31, 고대면 진관리)씨는 사법고시 1·2차에 모두 합격했고 면접 이후 최종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최씨를 보면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부터 떠오른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손인준씨가 6학년이었던 20여년 전 남편인 손철원씨가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만에 숨을 거두었다. 작고한 손씨와 2남4녀를 둔 최씨는 그 당시의 아이들의 나이와 학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당시 자녀들의 학년과 나이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현실이 믿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암담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그때는 정신이 없었어요. 애들은 꼬물꼬물 하죠! 싫은 것도 없었어요. 고생하는 것, 힘든 것, 억울한 것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생각했다면 아마도 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도 이웃집 남자들에게 낫 하나 갈아달라고 안 했어요. 담배 잎 싸는 일도 도움없이 혼자 했습니다.”
말 그대로 최병씨는 강했다.
이런 최씨에게 2004년 12월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기쁜 소식은 울음바다를 만드는 법. 손인준씨의 합격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울음바다로 빠지게 만들었다.
손인준씨의 형 손재성(35)씨와 결혼한 형수 김현정(31)씨는 시어머니를 대신해 손인준씨를 가까이서 뒷바라지했다. 또 손재성씨는 얼마 안되는 급여에서 매달 60만원씩을 동생을 위해 썼다.
2차 시험발표가 있은 뒤 손인준씨는 형수인 김씨에게 한 통의 전화를 했다. 수화기 속에서 ‘형수님!’이라는 손인준씨의 음성이 들렸다. 하지만 뒷말이 없었다. 긴장이 됐고 초초한 나머지 김씨는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곧바로 김현정씨는 시어머니인 최병씨에게 전화를 했다. 합격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지만 너무 감격한 나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련님 합격했어요.”
그 말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이다. 어머니 최씨 역시 며느리가 한참 말이 없자 “아니 왜 그러냐? 이번에도 틀렸냐?”라며 체념 가까이에 마음을 두었다. 그러나 “도련님 합격했어요” 그것이 결말이었다.
이처럼 손인준씨의 사법고시 합격은 가족들은 ‘슬프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최병 여사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돼 생활보호지원금 16만원과 병원비를 지원받고 있는데 도움을 받는 만큼 게으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일을 하는 바람에 연골이 상해 힘든 일을 할 수 없는 지금도 도움을 받는데 노력해야 한다며 마늘을 까고 근검절약하며 살고 있다.
“그래도 담배농사가 자녀들을 가르치는데 큰 힘이 됐어요. 3단을 심으면 500만원의 수입이 있었어요. 그래서 인준이 대학 보내는 게 가능했나 봅니다.”
“하지만 쓰고 뭐할 정신은 없었어요. 근검절약만이 삶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이 이 모양이네요.”
이쯤 되면 최씨의 눈에서 눈물이 나올 법도 했다. 하지만 최씨의 눈에 눈물은 고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것을 책으로 쓰면 몇 권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이 왠지 최씨에게 어울릴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관련기사 1면>
최병·손인준 모자의 의사소통
“그냥 그냥 살아요” , “돈 떨어진 것”
사법고시에 합격한 손인준씨는 차분한 성격이라고 가족들은 전했다.
어머니 최씨에 따르면 돈이 떨어져도 절대 돈 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어머니 최씨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을 때 “그냥 그냥 산다”고 답하면 그것은 곧 돈이 떨어졌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노모의 말이다.
그러면 이래저래 모아두었던 돈을 아들에게 보낸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 아들. 그리고 그런 아들을 끝까지 가르쳐 온 노모... 이들이 있어 올해 연말은 더욱 포근하고 잔잔하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