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패인 주름은 나이를 가늠 할 수는 있게 할지라도, 그의 연륜은 가늠 할 수 없게 만든다. 얼굴 곳곳에 여느 노인과 다름없는 주름들, 그리고 빗질 한번 안 했을 법한, 그렇지만 단정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하는 이 할아버지. 흑백의 이 사진 안에 이 노인의 얼굴은 미소인지 냉소인지 모를 표정을 담고 있다.

ꡐ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ꡑ

책까지 낼만하면 초등학교 공부는 마쳤을 터인데.. 아니면 이 할아버지 일제시대에 학교를 다닌 탓으로 공부를 제대로 못한 탓일까. 책표지에 떡 하니 표준어가 아닌 비표준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왜일까. 인터넷에서의 채팅용어로 비표준어 사용은 점차 문제가 되어 가는 추세에 이런 사투리가 책표지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하나도 거슬리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구수하게 느껴지는 이 사투리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사게 됐는지도 모른다.

모 자동차 회사에서의 직원 채용의 비리, 모 학교에서의 선생님의 부정행위. 뉴스는 세상이 말세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최면술 같은 걸까. 연일 보도되는 내용은 밝고 맑은 세상이라는 생각은커녕, 이렇게 혼탁한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혐오감이 들게 만든다. 그런데 장작나무 더미 앞에 이 할아버지는 가진 것이 많아 보이지 않아도 넉넉한 웃음을 가지고 계시다. 그는 자연에서 우주를 배우고 섭리를 배운다고 말하고 있다. 농사꾼이라 자처하는 이 노인은 세상 속에 속해 있으면서도 세상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도인 같은 모습이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욕심 속에 아웅다웅 사는 사람들에게 냉소를 보이는 듯한 이 할아버지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걸까?

우리 집은 농사를 짓는다. 다시 말해 내가 학교를 가고 또 밥을 먹는 것은 땅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밭에서, 논에서 일에 지쳐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시는 부모님 앞에서 걱정을 빙자한 어린애 같은 불평만 늘어 놓았었다.

그런데 이런 농사로 어떤 할아버지는 책까지 내셨다. 고향에서 소박하게 농사를 지으며 혼자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터득하신 이 할아버지. 뭔가 내가 매일 보던 땅을 이 할아버지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도라지에 대해서 심오하게 얘기하며 풀뿌리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시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눈가에는 어느새 웃음이 피어나는 듯하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흙 냄새가 내 콧 가에서 맴도는 듯하다. 언제고 맡아도 질리지 않을 흙 냄새가 말이다.

전혀 화려하지 않은 이 할아버지의 사진처럼 책 속에 할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쓴 편지도 흙 냄새 그대로 소박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지혜는 감히 그 누가 초라하다 말하지 못할 정도다.

이 할아버지가 주는 선물은 낡은 배낭 속 나물들과 농사지은 것들이다. 한숨소리 속에서 어지럽게 살아가는 지금, 이 할아버지의 배낭 속 선물들을 펼쳐 놓고 소박함의 아름다움과 자연에게서 배우는 지혜들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밭에서 허리 굽혀 농사일을 하다 하늘을 향해 쳐든 얼굴에 한줄기 땀을 닦아주는 한줄기 바람처럼 그렇게 조용히 다가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어쩜 질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굳이 많이 가지지 않아도 살 수 있으면서 지금 가진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움켜쥐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소박함을 배우라며 조용히 가르치고 계신 것이라고 말이다.

오늘도 작은 씨 하나에서 세상을 읽고 웃음을 찾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하루를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