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진료소는 의료혜택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세워지는 ‘작은 보건소’다. 보건진료소에는 진료소장 1명이 근무하며, 보건법에 정해진 1차 질병을 주로 치료한다. 현재 당진에는 18곳의 보건진료소가 있다. 이 중 모평리 마을회관 옆에 있는 모평리보건진료소는 하루에 10여명의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곳이다. 이들을 돌보는 신현영(41) 진료소장은 벌써 14년 동안 보건진료소에서 일해왔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착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신 소장이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은 다른 사람 모두 하는 일이라면서 인터뷰를 극구 거절했지만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묵묵히 허락해줬다.
진료소에서 ‘사는’ 보건진료소장들
보건진료소는 보건의료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워진다. 즉, 병원이나 의원, 약국 등 일반적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건진료소를 이용하고 있다.
보건진료소장은 반드시 관내에 거주해야 된다는 규정이 있다. 진료소를 급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 곧바로 진료를 해야하기 때문에. 하지만 대부분의 진료소장들은 최대한 가깝게 있기 위해 진료소에 거처를 마련 한다. 신 소장도 마찬가지. 결혼한지 12년째인 신 소장은 지난 1999년 모평리보건진료소로 발령받은 이후 조그마한 진료공간 외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살림을 하고 있다. 진료소와 일반가정이 붙어있는 셈이다.
이 진료소도 지어진 지 20년이 넘어 가끔 비가 새거나 시설이 고장을 일으켜 신 소장을 안타깝게 한다. 그럴 때면 신 소장은 어쩔 수 없이 남편 김한기씨(농업기반공사 근무)를 호출할 수밖에 없다. 일하는 남편을 불러내 미안하기도 하지만 방법이 없다. 신 소장은 자신이 호출할 때마다 곧바로 달려와 도와주는 남편이 고맙다고 말한다.
하루평균 10명이 이용해
모평리보건진료소에는 하루에 평균 10명 가량이 이용한다. 많을 때는 20∼30명이 찾아와 신씨를 정신없게 만들고, 적을 때는 서너명 남짓 찾을 때도 있다.
주로 고령의 농민들이 많고, 특히 관절염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농민이라면 대부분 갖게 되는 질병인 관절염을 완전히 낫게 하기는 어려워도 약과 간단한 치료로 통증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1차 질병을 주로 맡고 있지만 가끔 큰 병을 가진 환자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며칠 전 평소 고혈압으로 고생하는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찾아온 할머니의 모습이 이상해보여 몇 마디 말을 나눠본 신 소장은 바로 뇌졸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평소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던 할머니인지라 약을 드리고 병원에 꼭 가시라고 당부해도 안 가신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신 소장. 신 소장은 즉시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당진의 큰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곤 당진에 산다는 할머니의 아들에게 즉시 연락을 취해서 할머니의 소식을 알려줬다고 한다.
기쁜 마음으로 진료에 나서는 신소장.
보건진료소는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급한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그 때문에 진료소장은 군내에 거주해야 된다는 규정이 생긴 것이다.
신 소장도 모평리에 있는 지난 6년 동안 밤늦게 찾아오는 환자들을 많이 돌봐줬다. 농번기 때는 대부분 낮에 일을 하기 때문에 찾아오지 못하다가 밤에 일을 마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진료소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닌지라 가정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법도 하지만 신 소장은 항상 주민들을 위해 활동한다는 생각으로 환자들을 대한다. 14년 동안 이같은 생각을 가지고 진료소장직을 맡아왔던 신 소장에게 주민들의 칭찬이 모아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보건진료소장은 어디나 어려울 것”
이제 마흔 줄을 넘긴 신 소장. 그러나 힘이 닿는 한 진료소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지만 남을 끊임없이 도와야 하는 일이 좋다는 신 소장. 밤늦게 환자가 찾아오면 같이 환자를 돌봐주기까지 하는 남편과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엄마를 이해해주는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신 소장은 자신과 같은 일에 종사하는 다른 진료소장들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격려가 되길 바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