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부 한번 뜻을 세우면 오직 그 뜻을 향해 나아갈 일이다. 만약 세상이 받아주지 않으면 물러서서 때를 기다릴 일이다. 기다려도 때가 오지 않으면 그대로 조용히 늙어 죽을 일이다. <이문열 '사색' 中에서 >
한 여배우의 ‘젊은 죽음’이 온 세상을 들끓게 한 몇 주였다. 가롯유다의 죄가 예수를 판 것에 있지 않고 그가 스스로 자살했다는 것에 있다는 말처럼 죽음(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은 늘 긍정의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것은 아프고 편치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주변세계와 그 세상의 올바른 변화를 위해 생을 마감한 동시대의 영웅들 때문이리라.
1928년 아르헨티나의 한 중류가정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0대 초반까지 의학을 공부한 엘리트였다. 그러나 두번에 걸친 남미여행을 통해 고통받고 아프고 편치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가난한 민중의 삶을 지켜본 그는 이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명 밖에 길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의학도로서의 활인검(活人劍)을 버리고 혁명가로서의 쌍검(活人劍과 殺人劍)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후 멕시코로 간 게바라는 1956년 피텔 카스트로 형제를 만나면서 구체적인 쿠바혁명 계획을 세우게 된다. 2년 후 산타클라라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혁명의 승기를 잡은 카스트로와 게바라는 다음해 1월 결국 수도 아바나에 입성하게 된다. 이로 인해 혁명정부의 2인자 자리에까지 올랐던 체 게바라는 또다시 민중의 불편한 삶 속으로, 내전 속으로 혁명을 위해 볼리비아에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마치 우리가 익히 보아온 예수의 모습을 한 채 체포된 뒤 처형당했다. 그의 나이 39세.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었다.
삶이 아름다워야 그 죽음을 기억해준다. 어찌 아름다운 삶과 죽음이 게바라의 것 뿐이겠는가. 전쟁통에 ‘어쩌다 추하게 쓰러질까 꽃무늬 향수병 하나 명찰 주머니에 삼가 지니고 다녔다’는 6.25 때 한 육군 사병의 꽃다운 죽음도 나는 기억한다. 죽음 이전의 아름다운 삶. 오늘도 다 읽은 책을 어루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슴이다. 노형수 (새서울캠퍼스학원 사회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