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이문열

펴낸곳 / 믿음사

값 / 7,500원

노형수 동서가구 당진대리점

소설 속 주인공,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를 향해 끝없는 물음을 던지는데

“저 舊約時代 神은 어린 羊들의 生血을 빨고 肥大하였다.

인간이 손을 벌리고 孤兒같은 표정으로 무엇인가 바랄 적에

神은 木像의 얼굴로 침묵하였다.

풍금을 울리지 마라.

지친 蕩兒가 되더라도 버리고 온 고향일랑 찾지 말라.

이제는 잡아 줄 羊조차 없어 오늘의 諸神은 굶주렸는데

홍수가 나도 다시는 노아의 方舟를 만들지 말라.”

이어령 전집 中에서

십 수 년전 읽었던 이 소설을 다시 읽은 까닭은 소설의 액자만 보았지 그 속의 글은 읽어

내지 못했었다는 자못 ‘기특한’ 깨달음 때문이었다. 당시엔 작가 이문열이 말하고자 했던

神에 대한 진지한, 그러면서도 끝없는 물음이 왜 읽히지 않았었는지. 책장 갈피갈피마다 숨

어있는, 내게는 달콤하기까지 한 반신 혹은 반기독의 密語들.

니체가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그리스도를 비꼬았다는- 마리아가 남의 아내 될 여인이

었음으로 하여 뒷날 그 아들은 〈자기가 세운 금단의 문을 스스로 허물고〉 〈샛길로 온〉

神이라는 빈정거림이 있었다는 것.

소설 속의 주인공 민요섭의 기독교적 정당화 체계에 대한 부정의 논리는 아하스 페르츠라

는 전설적 인물에 의하여 전개된다. 피조물의 의지까지도 창조주께서 주시지 않은 것이 없

다면 아벨을 죽인 카인의 의지는 누구에게서 왔냐는 의문. 전지(全知)의 그분께서 아벨이 눈

앞에서 맞아 죽는데도 그대로 보아 넘긴 것은 살인을 용서한 것 이상의 뜻이 있다는 것.

우리들이 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에 대하여 죄지은 마음을 갖고 있는데

대하여서도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에게 한 마디 해 준다 - 지난 날 당신이 보였던 기적의

반만 가지고도 이 불필요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당신이 굳이 비참한 모습으로 그걸 감

수하는 것은 바로 더 따가운 죄책의 가시를 인간의 마음에다 찔러 넣겠다는 거지요?

이 외에도 아하스 페르츠와 예수가 만나 나누는 대화 속에는 일반 민중의 신에 대한, 신을

향한 많은 물음이 담겨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속 주인공인 바스커빌의

윌리엄 수도사의 말이 오히려 나를 자유케 한다.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

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 진리를 위

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

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