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이 시로 승격할 당시 민간차원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박정래씨를 만나 사례를 들어 보았다. 박씨는 현재 논산시약사회장을 맡고 있으며 논산JC 회장, 논산청년연합회장을 역임했다.

인터뷰는 본지와 기사제휴협약을 맺고 있는 오마이뉴스 윤형권 시민기자가 맡았다.

- 논산시 승격 운동은 언제부터 태동했으며 당시 어떤 직책을 맡고 있었나?

" 1996년 시로 승격됐으니까 시 승격운동이 본격화 된 것은 1994~1995년이다. 시 승격운동 당시 시민단체는 거의 없었으며 군청, 군의회, 국회의원, 도의원 등과 JC, 로타리클럽, 라이언스클럽 등과 건양대학교, 종교단체 등이 시승격 운동에 나섰다. 당시 나는 논산JC 회장을 맡고 있었다.

- 시승격 운동 당시 논산군이 시로 승격하기 위한 가장 큰 난제는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극복했나?

" 가장 큰 난제는 인구문제였다. ‘도농·복합도시’ 기준이 15만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일부 읍의 인구가 시승격 기준에 약 5~6천명이 부족했다. 건양대학교 학생들을 논산시에 전입시키는 운동을 전개했다. 학교측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입한 학생들에겐 장학금 지급도 했다. 학생들, 교직원, 교수 등이 전입을 많이 해 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또 군청직원들도 전입운동에 동참했다. 논산은 대전에서 불과 40분 거리밖에 안돼 대전시에 살면서 군청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계룡출장소(지금은 계룡시), 육군훈련소, 일반 기업체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었다. 거리에는 <논산시 주민증 갖기 운동> 현수막을 내걸고 홍보했다. 또 차량 뒷유리에도 스티커를 부착해 인구를 채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 민간차원에서 시승격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으며 그 파급효과는 어느 정도 였나? 군 행정부서의 지원은 있었나?

" 민간차원의 시승격운동으로는 JC에서 ‘논산시 승격 기원 열린음악회’를 개최했다(KBS 열린음악회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개최한 음악회). 건양대학교에서 열었는데 논산지역 출향인사들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음악회를 통해 얻으려고 했던 것은 주민들이 하나로 되는 것,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 출향인들과 거주민들이 서로 시승격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등이었다. 리본달기, 현수막, 차량스티커 등 효과가 있었다. 군 당국에서는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시승격에 대비해 노력을 했다. 군 당국이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역할을 했다.

- 시승격 당시 소감과 시승격 후 주민들의 민생에 직접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문화예술 인프라 확충같은 변화는 어느 정도인지, 세부담 과중 등 시승격으로 인한 부정적인 측면은 없는지?

" 시승격 전후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시민’이라는 어휘에서 나오는 자긍심, 즉 심리적인 면이 가장 큰 것이었고 세금증가와 같은 문제는 특별하게 체감하지 못했다. 시승격 전에는 인식부족으로 세금부담에 대한 말들이 약간 있었지만 기우였다. 시승격에 소극적이고 회의적인 사람들의 논리가 세금증가문제인데 이것을 가장 경계해야 했다. 문화예술의 인프라 확충은 예산의 증가로 약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논산시 자립도가 20%도 안 되기 때문에 피부에 와 닿을 정도는 아니다.

- 시승격운동을 벌이는 당진의 민간단체에게 특별히 해주고 싶은 조언은?

" 단결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인구문제, 기관 수 등을 채우는데 노력하고 외부적으로는 정부와 국회에 적극적으로 로비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홍보가 중요하다. 당진군민을 대상으로 한 홍보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을 대상으로한 시승격의 당위성과 당진에 대한 홍보를 많이 해야 한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전개하는 방법도 좋을 듯 하다. 언론매체에 광고를 많이 하는 것도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군민들에게는 ‘시승격을 하면 이런 점이 좋다’, ‘세금부담 문제는 기우다’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