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군이 시로 승격된 때는 1996년. 임성규 논산시장(65)은 당시(1995년) 논산군의회의장으로서 시승격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임 시장은 “당시 군 인구가 17만명을 넘어섰음에도 읍 인구가 5만 이하로 시승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법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이어 “정·관·민 등 각계각층이 힘을 모아 의지를 모으고 객관적 논리를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고 평했다.

임 시장은 “도·농 복합시여서 시 승격으로 인한 주민의 세부담도 거의 없고 자긍심 고취, 지역발전 기대감, 투자유치 등 여러 측면에서 실익이 많았다”고 말했다.

■인터뷰 요지

- 논산시 승격 당시 어떤 일을 했나

" 논산시가 시로 승격된 것은 1996년이다. 시 승격 직전인 1995년 논산군의회의장직을 맡아 의회 차원의 지원역할을 담당했다. 주로 정치권과 민관의 힘을 결집하는 것은 물론 건의문 채택 등 추진단에서 주민의 의견을 모으는 역할을 담당했다.

- 추진단 구성은 어떻게 했나?

"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정계는 물론 민·관·의회·출향인사들을 모두 망라해 구성했던 것으로 안다. 시 승격 관철을 위한 대표체로서 궐기대회와 군민홍보 등 의지 결집과 분위기 제고 등 역할을 담당했다.

- 당시 논산군이 처했던 법령상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극복했나?

" 법령상 여러 충족조건이 있었지만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도심 읍 인구가 5만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법령상 한계였다. 당시 논산군 인구는 17만여명에 이르러 전체 시승격에 필요한 15만 기준을 넘어섰다. 반면 논산읍, 강경읍, 연무읍 등은 개별적으로 읍인구 기준 5만 이상 조건에 미달했다. 법령의 조건에 미달하니 시 승격 자체가 불가능해 진 것이다. 때문에 읍 인구를 기준으로 시 승격을 제한한 법령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도·농 복합 자치단체의 특성을 적극 설명했다. 당시 지역 국회의원을 통해 국회가 논산지역 특성을 반영한 도농 복합시 승격 법령을 제정토록 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타 군의 사례를 모으고 국회의원은 물론 당시 내무부 직원들을 설득, 이해시켜 법령을 제정했고 끝내 시 승격을 이룰 수 있었다. 처치가 비슷한 용인시 등과의 공조활동이 큰 도움이 됐다.

- 당시 군청과 정치지도자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 군청에서는 당시 내무과 행정계에서 관련 지원업무를 담당했다. 법령을 검토하고 타 군 사례를 모으고 공조체계를 확보함은 물론 논리개발, 방향제시 등 역할을 담당했다. 시·도의원들은 중앙정부와 국회에 제출할 건의서를 채택하고 지역 국회의원은 입법 활동을 위해 중앙부처와 동료 의원들을 설득하는 일을 맡았다. 지역민의 의지를 결집시키는 것도 군과 정치지도자들의 몫이었다.

- 시 승격 후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 예산이 늘어났다. 반면 도농복합시로 시 승격으로 인한 주민의 세부담은 거의 없었다. 반면 자긍심 고취, 지역 발전 기대감, 투자유치 등 여러 측면에서 실익이 많다. 예를 들면 시 승격으로 복지관, 청소년회관 등의 유치건립이 훨씬 용이해졌다. 예산확보가 ‘군’일 때 보다 수월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