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총 고증, 유물관 건립 등으로 열매

“처음엔 저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특이한 돌들을 학교로 하나 두개씩 학교로 가져오는 거예요. 친구들한테 나눠주기도 하고 돌칼 같은 것은 처음에 정체를 몰라 사진을 찍어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알고보니 1만년~4만년 전인 구석기시대 유물들이었습니다.”

석문중학교 향토유물실의 주인은 바로 학생들이었다. 신양웅 교장은 학생들이 가져 온 이상하게 생긴 돌들의 정체를 밝히고 그것이 소중한 유물이라는 것과, 그래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고 학교 교실 한켠에 유물실을 마련했다. 그것은 곧 당진의 뿌리를 찾고 후세에 자취를 남겨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뿌리를 찾자는 그의 의지는 향토사 연구로 이어져 아무도 돌보지 않은 채 잊혀져가던 소난지도 의병들의 유골을 거두어 봉분을 만들고 소난지 의병항쟁의 고증작업에 뛰어들게 했다. 처절했던 의병들의 최후격전 현장을 기억하고 있는 인사들을 수소문해 녹취를 했고 관련 기록을 찾기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소난지도 의병항쟁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고단한 여정은 지난 2002년, 소난지도 의병항쟁 기념사업회 학술담당 박상건 부회장이 ‘소난지도 전투상황 보고’ 문서를 발견하고 2004년 말 학술고증 용역을 의뢰받은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가 황성신문보도 등을 추가로 발굴해 역사적 실체가 뚜렷해지면서 일단락 되었다.

신 교장이 소난지 의병항쟁연구에 뛰어든지 35년만에 실체를 뒷받침하는 사료고증이 이뤄진 것이다. 진실을 찾겠다는 학자적인 근성과 향토사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소난지 의병항쟁은 전설로만 전해지다 잊혀지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정년퇴임을 하면 이제 어엿한 전시시설로 거듭난 석문중 향토유물실의 문지기 노릇을 하겠다는 그의 말에서 아무도 관심두지 않았던 향토사 연구의 외길을 걸어 온 노학자의 식지 않는 열정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