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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군의 통계연보가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63년부터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2003년까지 10년단위로 통계자료를 뽑아 이 중 신평면의 통계를 별도로 발췌했다. 사회변화에 따라 통계항목에도 변화가 많아 1963년부터 2003년까지 일관성 있게 공표할만한 통계는 인구현황과 농기계보유현황, 전화가입자 수 등 몇몇 항목에 불과함을 밝혀둔다.
10년마다 2천명씩 감소, 근래 들어 소폭 증가
노인인구 5.6%에서 20%로 급증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인 1963년도, 신평면의 상주인구는 만6천여명이었다. 당시 당진군 전체인구는 17만2500여명이었다. 1973년도에도 큰 변동이 없었으나 1983년도엔 이농현상에 따라 만4000여명으로 급감했고 1993년도엔 만2000여명까지 떨어졌다. 10년 단위로 2천명씩 감소한 셈이다. 그러던 것이 2003년도엔 만3000여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인구수의 감소와는 별개로 세대수는 계속 늘어 1963년도 2626세대였던 것이 2003년도엔 4564세대로 두배 가까이 증가해 핵가족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연령별 인구현황을 보면 1963년도에 9살 이하의 인구가 5528명으로 전체 신평면 인구의 33%를 차지했고 노인인구인 60세 이상이 948명으로 5.6%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2003년도 당진군 전체통계에 따르면 9살 이하 인구가 군 전체인구의 12.2%에 불과하고 60세 이상은 20%에 이르러 상황이 역전됐다.
혼인대비 이혼율의 증가도 눈에 띈다. 1983년도 4.8%였던 신평면의 이혼율이 2003년도엔 36.4%로 크게 늘었다.
쟁기에서 트렉터까지 40년
3000평 미만 소농 대부분
1963년도 신평면의 농가인구는 총 2626가구 중 2021가구로 80%에 육박했다. 경작 규모별로는 5단보(1500평)이상 1정보(3000평) 미만이 754농가(28%)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1정보 이상 2정보(6000평) 미만이 613호(23%)였다. 3정보(9000평) 이상 농가는 한 농가도 없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이같은 순위에는 변동이 없다.
2000년도 당진군 농업 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군전체 15,883농가 중 1500평이상 3000평미만 농가가 3695농가(23%)로 가장 많고 다음이 3000평 이상 4500평 미만으로 3021농가(19%)였다. 즉 전체 농가수의 42%가 4500평 미만의 소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도엔 9000평 이상 농가가 1877호에 이르러 60년대와 크게 대비된다. 이중 3만평 이상의 대농도 126농가에 이르러 기계화에 따른 영농규모화의 실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농기계의 변화를 보면 좀더 단적으로 영농환경의 변화를 알 수 있다. 1963년도 신평의 농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농기계는 가마니대였다. 그 다음이 쟁기, 탈곡기 순이며 양수기, 295마력짜리 원동기 등이 있었다. 1973년도엔 인력 제승기, 분무기를 많이 썼고, 80년대부터 본격적인 기계화가 시작돼 1983년도엔 동력경운기가 509대에 이르렀다. 이 시기엔 동력이앙기도 보급됐다. 1993년도엔 트렉터와 콤바인이 등장했고 2003년도엔 트랙터가 300대를 넘어섰다.
73년도 차량 無, 03년 현재 4천대 넘어
93년 전화가입 세대수 앞서
1973년도 신평면에 차량을 소유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당시 당진군 전체 차량등록 대수는 133대. 당진읍에 70대 합덕읍에 39대, 송악면에 11대가 각각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93년도엔 1035대로 급격히 늘었고 2003년도엔 4088대로 신평면 전체 세대수의 90% 가까이 차량을 소유하게 됐다.
차량의 증가는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인의 양산을 가져왔다. 2003년도 신평면의 지체장애인수는 408명으로 당진읍 582명에 이어 군내에서 두 번째로 많다.
신평면은 1963년도에 불과 4대의 전화가 있었다. 그나마 3대는 관공서용이었고 공중전화가 1대로 민간인 전화가입자는 없었다. 당시 당진군 전체 전화가설수는 308대로 당진읍에 125대, 합덕에 104대, 송악에 45대가 있었다. 1973년도엔 가입자가 74명으로 늘었고 1993년도엔 3651명으로 세대수를 앞질렀다.
구호 대상자 458가구에서 195로 줄어
1973년도 신평면에는 ‘공공구호대상자’가 458가구였다. 이중 생활보호자가 108가구, 경작면적이 900평 미만이거나 농사를 짓지 않는 영세민이 350가구였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1983년도엔 ‘생활보호대상자’가 282가구(거택보호 85, 영세민 197)로 70년대에 비해 2배 가까이 줄었다. 1993년도엔 212가구, 2003년도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195가구로 ‘더딘’ 감소율을 보였다.
80년대 서비스 산업, 90년대 공장입주
2003년 음식점만 197개
1963년도, 신평면엔 전체 산업인구 8149명 중 92%에 해당하는 7550명이 1차산업인 농어업에 종사했고 나머지 599명(7.3%)이 제조업 등 기타산업에 종사했다. 1973년도엔 도소매점이 114개에 이르렀으며 숙박업소 등은 그때까지 없었다. 당시 당진군내에는 모두 28개의 숙박업소가 있었다. 서비스 산업이 번창하기 시작한 80년대, 신평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3년도 음식점과 다방 등 식품접객업소가 38개소에 이르렀고 숙박업소 2곳, 이미용업 15개소, 당구장도 1곳이 있었다. 당진군내에 공장입주도 시작돼 총 72개 업체가 가동중이었으나 신평에 등록된 공장은 없었다.
1993년도엔 신평에도 공장입주가 많았다. 모두 30개업소에 종업원수는 2080명이었다. 식품접객업소도 더욱 늘어 모두 95개소(음식점 77, 다방11, 휴게실 5 등)였고 공중위생업소는 21개소(숙박업소 5, 이미용업소 16, 당구장오락실 10)로 늘었다.
2003년도엔 제조업체수만 54개소에 이르고 식품접객업소가 288개소(일반음식점 192, 휴게음식점 20, 다방 17, 단란주점 7 등), 공중위생관계업소가 43개소(이미용 25, 숙박 9, 위생관련업 8 등)에 이르고 있다.
1인 조세부담 250원에서 32만원으로
42만원이던 등록세 11억으로
신평면민이 지난 반세기 동안 부담해 온 세금은 얼마나 될까? 1963년도에 신평면민은 가구당 1265원, 1인당 250원의 조세를 부담했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1983년도엔 가구당 10만원 1인당 1만8000여원을 부담했다. 2003년도 신평면민이 낸 세금은 모두 43억여원으로 가구당 95만여원, 1인당 32만여원이다.
세목별로 보면 1993년도의 취득세와 자동차세의 증가율이 두드러진다. 이는 공장입주와 차량증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1983년도 2천여만원에 불과하던 취득세가 1993년엔 5억8천여만원으로 무려 30배 가까이 올랐으며 800여만원에 불과하던 자동차세도 1억5천여만원으로, 2003년도엔 4억7천여만원으로 올라갔다. 토지거래 규제조치 등으로 1993년도 42만여원에 불과하던 등록세는 규제가 풀리면서 2003년도 11억여원으로 급등했다. 이 기간 부동산 거래와 땅값 상승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