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플루엔자 자문위원, 국립보건연구원 바이러스부 자문위원, 질병관리본부 사스자문위원, 식품의약품안전청 중앙약사심의위원.
타이틀만 봐도 범상치 않은 이 이력의 주인공은 바로 송악면 월곡리 출신의 김우주(47.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씨다. 식중독이나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기만 하면 매스컴에 단골로 출연해 조언을 해주는 사람으로 그는 이미 감염질환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김교수는 지난해 한 중앙일간지 의학전문기자가 집필한 대한민국 베스트 닥터 450인중 한명에 선정됐다. 전국의 전문의 2천명으로부터 ‘내 가족을 맡기고 싶은 최고의 명의’로 추천을 받을만큼 의학계 내에서도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매스컴 출연으로 인한 대중적인 인기 또한 덤으로 누리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고려대 의료원 봉사단장을 맡아 쓰나미 피해를 입고 있는 스리랑카에서 2주간 의료봉사를 하는 등 인도주의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부친 김관영씨와 모친 000씨의 8남매 중 일곱째로 외아들이기도 한 그는 상록초등학교 4학년 재학중에 서울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고려대 의대에 진학해 이후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동기로는 현 당진내과 박세진 원장이 있고 상록초등학교 동창으로 최원묵, 김필주씨를 기억하고 있다. 매형인 홍순성씨는 당진읍내에서 백년회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오래전에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과 늘 연이 닿아있는 듯 하다. 고향사람들은 급할때마다 그의 도움을 청한다. 의약분업 분쟁으로 병원들이 환자를 받아주지 않았을 때에도 그를 통해 의료진을 소개받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인척인 김태영씨는 말한다.
“당진·서산사투리는 금방 알 수 있더라구요. 그래서 사투리 쓰는 환자 만나면 고향부터 물어봅니다. 월곡리 은행나무집 아들이라고 하면 놀라면서 알아보는 분들도 있지요.”
그의 고향집 앞마당엔 수령이 6백여년이나 된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다.
“새벽에 집에서 한진까지 걸어나와 5톤짜리 통통배 타고 평택 만호리에 닿으면 그곳서 내기리까지 또 걸어가 서울가는 버스를 타곤 했어요. 서울에 도착하면 저녁 6~7시가 되곤 했죠.”
서울로 유학을 가서 어쩌다 고향을 드나들던 시절의 추억이다. 그는 좀 불편했지만 나름의 낭만과 운치가 있었던 고향이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고향에 갈때마다 무슨무슨 반대 플래카드가 붙어있더군요. 발전도 좋지만 옛모습이 너무 많이 파괴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꽃게와 준치가 지천이었던 시절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더 이상 파괴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게 고향당진을 향한 그의 염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