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신과 같던 외아들 제대 한달 남겨두고 보낸 부모의 절규
장마가 한창이던 지난 7월27일, 매스컴에서는 공동경비구역에서 훈련 중 사망한 네 명의 병사소식을 일제히 전하고 있었다. ‘임진강 부근에서 ‘적 포탄 투하’를 가상으로 한 소대 전술훈련을 받던 안학동 하사가 발을 헛디뎌 급류에 휩쓸리자 이를 본 동료병사 셋이 안하사를 구하려고 물에 뛰어들었다가 함께 실종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24시간 후, 이들 네명의 병사는 모두 숨진 채로 발견되었고 곧이어 ‘죽음도 불사한 살신성인의 전우애’를 예찬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내 아들은 실족한 게 아닙니다”
맨처음 급류에 휩쓸려 갔던 고 안학동 하사. 그는 석문면 교로리 920번지가 집인 당진의 젊은이었다. 당진화력 앞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안수도·박정옥씨 부부의 외아들이었고 호서고등학교를 나왔다. 한남대 기계공학과 재학중 2003년 8월,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에 전입을 했고 제대를 불과 한달 남겨둔 시점에서 마지막 훈련 중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삶의 목표이자 희망이었던 아들, 자신들의 분신과도 같았던 아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 어떨지 자식을 군대에 보내놓고 노심초사하고 있는 이 땅의 어머니들은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하사의 부모는 지금 자식잃은 아픔도 감당하기 힘겨운 처지에 또 다른 상처까지 떠 안고 있다. 애시당초 잘못 알려진 아들의 죽음에 관한 보도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실족한 게 아닙니다. 적의 포탄이 떨어졌으니 대피하라는 명령을 수행하던 중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든 언론들이 일제히 우리 아이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진 것으로 보도를 했지요. 우리 아들의 실수로 다른 세명의 병사까지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소문이 들려 왔을때는 너무도 억울했습니다.”
아버지 안수도씨의 말이다. 실제로 부대에서 작성한 공무상병 인증서에는 안학동 하사가 실족을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인증서에는 ‘안하사가 중대장으로부터 적 포탄 낙하라는 우발상황을 부여받고 물속에 10여초 대피했다가 상황해제로 물 밖으로 나올 때 밀물에 휩쓸려 실종된 후 사체로 발견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실수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과 충실히 명령을 수행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는 것, 어느 것이 진실인가 하는 것은 사자의 명예가 달린 중요한 사안이다.
아버지 안씨는 아들의 시신을 병원으로 운구하던 구급차의 뒷바퀴 두개가 운행중에 난데없이 빠져버렸던 일, 입관식 때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던 일이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무언가 맺힌게 있어 아들의 원혼이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외침 같았다.
좀 더 남자다워지길 바라며 군대에 보냈지만 장마철 급류속에서 그런 위험한 훈련을 강행해야 했는지, 더욱이 구명조끼나 튜브같은 안전장구 하나 없이 훈련을 시켜야 했는지 아버지는 회한과 원망이 떠나질 않는다고 했다.
“훈련을 지시한 중대장으로부터 사과를 받긴 했습니다. 계속 이런저런 문제를 제기할 경우 여러 사람이 힘들어 질 것 같아 접어 두었지만 아직도 응어리는 풀리지 않네요.”
안 하사를 비롯 세명의 병사는 정상적인 작전명령 수행 중 순직한 것으로 결론지어져 일계급 진급과 함께 대전에 있는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매일 전화걸어 ‘엄마, 사랑해요’하던
자상한 아들
학동이는 엄마에게 분신과도 같았던 존재였다. 아들이었지만 집에서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용돈모아 생일 선물을 잊지 않고 챙겨주고 한번도 부모말을 거스른 적이 없었던 착한 아들이었다. 컴퓨터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그 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입대 전 부모님 용돈으로 100만원을 내놓고 간 기특한 아들이기도 했다. 군 생활도 성실하게 해 모범 대원으로 대대장, 중대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사실 군대에 보내지 않을 수도 있었던 아들이었다. 아버지 안씨는 열일곱살 때 산업재해를 당해 오른손 손가락 다섯 개가 전부 잘려나간 장애인이고 엄마는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다. 게다가 학동이는 외아들이다.
그렇지만 아들이 평소 소심한 성격이어서 험한 세상 꿋꿋히 헤쳐나갈 수 있도록 좀더 강인해지길 바라며 군대에 보냈던 것이다.
“사고가 나기 이틀전 4박5일간의 외박을 마치고 귀대하면서 학동이가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귀대하면 완전무장을 하고 30키로를 행군하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이번 훈련은 정말 받기 싫다고 토로하더군요. 한번도 자기 힘든 것 얘기 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 아버지는 어렸을적에 벽돌40개씩 지어 날랐다면서 참고 견디라고 타일렀습니다.”
그것이 아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투정이 될 줄 아버지는 몰랐다.
다시는 가슴에 자식 묻는 부모 없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슬픔은 산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살아있었다면 이미 제대를 해서 자신들 품에 돌아와 있을 아들. 그 아들의 방을 부모는 차마 치우지 못하고 있다. 아들이 즐겨입던 옷도 그대로 장롱속에 걸려있고 책상위엔 아들이 공부했던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어릴적 갖고 놀던 딱지까지 버리지 않고 서랍속에 모아두었던 꼼꼼한 아들, 그 아들이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모는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핸드폰의 컬러링도 바꾸지 않고 있다. 매일 두 번씩 전화를 걸어 ‘엄마, 사랑해요’하던 자상한 아들이 바뀐 컬러링에 행여라도 낯설어 할까봐서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아들의 번호를 만들어 입력시켜 놓았다. 언젠가 핸드폰 화면에 ‘사랑하는 내 아들’이 뜨면서 전화가 걸려올 것 같아서라고 한다.
며칠전 이들 부부는 아들의 추모비 제막식에 다녀왔다. 추모비는 사고현장 근처에 세워졌다. 임진강 물살이 그지없이 고요했다. ‘이런날 훈련을 했더라면...’ 국화꽃 바구니를 강물에 던지며 부부는 다시 한번 회한을 삭여야 했다.
“다시는 우리들과 같이 가슴에 자식을 묻는 부모가 없기를 바랄뿐입니다.”
부주의한 세상을 향한, 금쪽같은 자식을 군대에 보낸 모든 부모들을 향한 아버지 안수도씨의 기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