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

조선 후기 작자, 연대 미상의 군담소설.

내가 처음 <임진록>에 관심을 가진 것은 순전히 동생 때문이다.

동생은 임진왜란을 소재로 글을 쓴다며 우리집에 올 때마다 도서관에서 복사해온 글들이며 많은 책들을 가방에 가득 채워와서는 무겁다며 우리방에 풀어놓고 홀연히 답사하러 지방으로 떠난다. 하루는 그 짐을 정리해주려고 아무 생각없이 떠들어본 책이 바로 <임진록>이다.

<임진록>. 그 거창한 제목 앞엔 누구나 기가 눌려 경외심을 갖고 대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 방대한 허구의 스케일에 또 무릎을 꿇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 책에서 사명당편의 허구는 헐리우드 SF영화를 능가한다. 그는 수많은 병풍의 글을 말을 타고 달리며 모두 외워서 왜왕을 놀라게 하고 구리방석을 타고 팔만대장경도 읽고 구리집에서 태워 죽이려 하나 또 살아난다. 거기다가 용 세마리를 불러 비를 내리게 하여 일본을 물속에 가라 앉히려 한다.

이는 초등학생에게도 안 먹히는 ‘뻥’이었고 동생마저도 왜 이런 책을 애지중지하는가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오지않는 동생덕에 나는 그 복사물과 임철호 교수의 <임진록이본연구1>라는 책을 그게 그거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나는 그제서야 살아나는 <임진록>의 제목이 느껴졌다. 나에게는 임진왜란하면 이순신만 알면 된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다. 그런데 역사상의 실제인물의 활약 중 유난히 호기심을 끄는 두 인물이 있었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이다. 누구나 한번은 사명대사가 얼음빙자로 왜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을 어렴풋이 듣고 실제인양 믿었던 유년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좀 더 국사시간에 졸지않은 사람이라면 서산대사가 평양성을 탈환하여 서울을 수복했다는 것까지도 생각 날 것이다.

우리나라는 신라 화랑 때부터 내려오는 호국불교의 전통이 있었다. 그들은 살생을 금하라는 교리에 집착하지 않고 호국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아 순전한 애국심으로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으로 서산대사의 행적에 대해 깊게 알게 되었고 조금은 부정적이던 나의 시각도 변화되었다.

이 <임진록>을 계기로 <1592>년 임진왜란당시의 역사적 배경, 정치적 상황, 불교계의 수많은 의병 활약상 등을 정말 소상하게 알게 되었다. 별로 호기심이 없는 책은 줄거리만 알면 된다고 대충대충 읽었던 내 독서습관이 어느새 관련된 서적들까지 함께 읽다보니 바뀌었으며 임진왜란하면 이순신장군만 알면 된다던 나의 편협한 생각이 마냥 부끄러워진다.

※이본이 많아서 남진록, 흑룡일기, 흑룡록, 임직녹으로 불리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