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을 드시러온 아저씨께서 <아줌마 운전솜씨좀 늘으셨나?> 하시기에 자세히 봤더니 오래전 차를 가지고 외출을 했다가 태워드린 분이었다.

그때 차를타시며 아저씨는 대뜸 TV에서 <태조왕건>을 보아야한다시며 초보라서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나에게 빨리가자고 채근을 하셨다. 궁예가 곧 죽는다나? 그때 나는 사실 왕건과 궁예 견훤보다는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머루주를 유리잔에 마시며 좋아하는 모습은 마치 순박하신 우리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었다.

한때 궁예가 말한 <관심법, 미륵>은 유행어가 되어 사람들마다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고 나에게는 <삼국유사>를 읽게 만들었다. 고운기 교수가 지적했듯 <삼국유사>만큼 많이 알면서도 그것만큼 모르는 책이 없고 그로 인해 비슷한 시기에 같은 시대를 다룬 <삼국사기>까지 덤으로들 알고있다. <삼국유사>는 고려시대 일연스님이 지은 책으로 <유사>라는 말이 시사하듯 정사로 쓰여진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빠진 이야기들을 보완한 야사의성격에 가까운 책이다. 이 책은 전 5권으로 나뉘어있는데 권의 의미가 오늘날과 다르므로 한권에 불과하며 139편의 기사를 주제별로 분류하여 수록하고 있다. 또한 시가문학의 결정체인 향가 14수도 들어있어 학창시절이 떠올라 옛일들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후고구려편에는 궁예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후백제와 견훤편에는 내가 좋아했던 아자개가 어떠했다는 전설도 있고 <태조왕건>의 중심스토리가 압축되어 있어 무척 흥미롭다. 139편의 이야기들을 일일이 읽다보면 너무나도 <삼국유사>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게 된다.

조상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런 책을 두고 중국의 책인<삼국지>만 어렸을 때부터 읽고 또 읽었기에......

나는 그동안 사찰이 있는 곳은 꺼림칙함이 있었는데.. 불교적 설화가 많이 실린 <삼국유사>덕에 모임이 있어 절에 가더라도 이제 친근감이 들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전이라고 하면 무조건 어렵고 딱딱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즈음 서점에 나가보면 많은 고전 책들이 예전과 다르게 디자인부터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다.

게다가 한글로 쉽게 번역되어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기 때문에 관심만 있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