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한들 뭣하겠어요”
일곱식구 가장으로, 눈먼 남편의 아내로, 치매 시어머니의 며느리로 살아온 세월
조선시대 때 나라에서는 관직을 지낸 70세 이상의 문신들에게 매년 두 차례씩 잔치를 베푸는 것으로 그들을 위로했다. 그 잔치를 ‘기로연’이라 했고 경로효친의 정신을 이어가자는 취지로 지난 12일 면천향교에서 열린 ‘기로연 시연’행사에서 한 여인이 효부표창을 받았다.
고운 빛깔의 한복이 검게 그을린 피부색과 대비되면서 고생한 흔적이 더욱 역력하게 드러난 이 여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이날 상을 받았다.
신평면 신당리 방명희씨(51). 오십대 초반의 나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깊게 패인 주름이 고난의 세월을 말해주고 온종일 뙤악볕 아래서 일해야 하는 농촌여인의 고단한 삶이 푸석푸석해진 머리칼에 묻어나고 있다.
병든 부모를 모시지 못해 내다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이 뉴스의 한 코너를 장식한지 오래인데 방씨는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 시어머니를 20여년 가까이 군말없이 모시고 있다. 게다가 남편은 시각장애인으로 일곱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자신의 몸이라도 정상이라면 몸 아끼지 않고 일해 볼 터인데 방씨는 수년전부터 고혈압에 당뇨에 관절염까지 앓고 있어 약을 달고 사는 처지다. 거기에 사위의 사업실패로 어린 외손주까지 방씨가 맡아 키우고 있다. 20마지기 논을 겨우 부쳐가며 병든 시어머니의 며느리로, 눈먼 남편의 아내로, 일곱 식구의 가장으로, 방씨는 세상 사람들이 힘들다고 손꼽는 일들을 한꺼번에 감당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웃들조차 ‘팔자 한 번 드세게 타고났다’고 말할 정도다.
방씨가 효부표창을 받은 건 병든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셔서라기 보다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고 있는 것에 대한 위로의 차원이자 존경의 표시다.
“상받을 자격두 없는데 어째 내 차례까지 왔는지.. 앞으루 잘 모시라는 뜻이 겠지유.”
방씨는 자신이 효부라는 이름으로 상을 받은 것에 대해 무척 쑥스러워 하고 있었다.
가장 크고 햇볕 잘 드는 시어머니 방
아직 출가 전인 자녀들과 외손주 등 일곱식구가 살기엔 턱없이 부족한 20여평 남짓의 조립식 주택에서 방씨의 시어머니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가장 크고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안방을 차지하고 계셨다. 덕분에 방씨부부는 자신들이 쓸 방이 없어 거실을 쓰고 있다. ‘당신이 원하셨기 때문에 안방을 내어 드린 것’이라고 말하는 방씨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착한 며느리로 보였다.
방씨의 집 앞마당엔 늘 빨래가 널려있다. 대소변을 제대로 못가리는 시어머니의 이불 빨래, 어린 손주의 옷 빨래가 끊일 날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치매증상까지 보이는 시어머니는 갈수록 식탐이 늘어 일 마치고 돌아온 며느리에게 늘 먹을 것을 달라신다. 식사 때만 빼고는 20여년을 방안에 누워서만 지내 온 시어머니, 늘 먹을 것을 찾으시면서도 정작 밥상을 차려 놓으면 안먹겠다고 고개 내두르는 시어머니, 그런 시어머니가 한없이 측은하다가도 고되게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와 인분으로 더렵혀진 집안 곳곳을 보아야 했을 때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런 시어머니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큰 짐이기에 자식들 세대는 하나같이 노인복지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한다. 노인전문요양기관이 세워지고 고가의 실버타운이 가진 것 없는 노인들과 그 자식들에게 위화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방씨는 형편도 형편이지만 그런 시설에 시어머니를 맡길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기냥저냥 살아왔는데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사신다구... 돌아가시기 직전에 다시 모셔온다는 것도 내키지 않구유. 여직까지 희생하구 살었는디. 조금 더 하믄 되는 거 아닌가유?”
고생을 운명으로 알고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좀 부족한 것 말고는
남과 다를 것 없어”
“다 버리구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 왜 읍었겄유. 저두 사람인디유. 근디 죄받을 것 같어서 그렇게는 뭇하겄대유.”
교회에 다닌다는 방씨를 지탱해 온 힘은 신앙심이었다.
“활달해서 맘속에 뭘 묻어두는 성격이 아니지요. 이 사람이 목소리가 커서 한번 소리내면 동네가 찌렁찌렁 울려요.”
안 가본 병원 없이 다 돌아다녀 봤지만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지금은 바로 옆에 사람도 못 알아볼 정도의 시각장애를 갖게 된 남편 박태홍씨의 말이다. 남편은 밖으로 돌아다니길 좋아한다. 남편은 시각장애인협회 사무실에도 자주 나가고 무슨 행사가 있다고 하면 빠짐없이 나간다. 충남장애인체육대회의 역도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고 노래, 훌라후프, 풍물 등 재주도 많다. 어려운 형편에 나들이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그런 남편을 부인 방씨는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머지 않아 시력을 완전히 잃어 암흑의 세상을 살게 될 남편에게 자신 역시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원하는 것 할 수 있도록 묵묵히 바라봐주는 것 밖에...
“늘 이 사람한테 미안하지요. 시집와서 고생만 시켰으니... 어머니 돌보랴 식구들 끼니 챙겨주랴 저까지 앞을 못보게 돼 농사일도 해야 하니 제가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남편은 거듭 아내에게 미안하다면서도 가진 것이 조금 부족한 것 말고는 자신들이 평범한 가족들과 다를 게 없다고 누누히 말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한번도 큰 소리내어 싸운적이 없었다는 방씨부부. 신앙의 힘이든 서로를 향한 신뢰의 힘이든 자신들에게 닥친 현실을 비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연륜을 읽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