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쌀값은 올벼를 수확할 무렵부터 80kg 한가마에 13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작년 같은 시기보다 무려 35,000원이 떨어진 셈이다. 농민들은 처음에 일시적인 현상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곧 쌀값 하락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추곡수매제도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을 위해 농촌의 남아도는 노동력을 공장으로 흡수했었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기술력과 자본 경쟁을 할 수 없었던 정부와 기업은 단순히 노동자의 저임금 정책을 펴야 했던 것이다.
노동자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일을 했다. 정부는 노동자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저곡가 정책을 펴왔다. 그 당시는 한국의 엥겔계수(국민이 먹기위한 식료품을 사기위해 지출하는 가계비 비율)가 상당히 높았다.
당시 국민이 먹어야 할 식량이 절대부족하여 쌀값을 비롯한 모든 농산물값은 상당히 비쌌는데 정부는 전체 쌀 생산량의 대부분을 사들여 싼값에 방출하여 국민의 식생활 지출을 낮춰 놓았다.
이것이 추곡수매제도의 시작이고 혹자는 이것을 이중곡가제라 부른다.
한국 경제개발의 최고 공로자는 다름아닌 노동자와 농민이란 점을 부인하지 못하는 대목이다.
언뜻 보기에 이 이중곡가제가 농민들의 쌀값을 지지해주는 제도처럼 생각되는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착각이다. 시장경제 논리로 볼 때 식량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이 이중곡가제가 쌀값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해 왔음을 얼른 짐작할 것이다.
농민들은 매년 생산비 이하로 떨어지는 쌀값을 보장받기 위해 정부와 국회에 수매값 인상을 요구해왔으나 정부와 기업은 수시로 외국의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여 농산물값 하락을 부채질해 왔다.
지금은 과도한 수입농산물에 의해 시중 농산물값이 폭락한 상황에서 추곡수매제도를 폐지함으로써 농민의 마지막 남은 경제 근거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1996년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되면서 모든 농산물 수입이 자유화되어 국내 농산물값이 폭락했는데 쌀 만큼은 10년뒤 재협상이란 면죄부를 받게 됐었다. 재협상이 시작된 2004년에는 굴욕적인 96년 협상을 만회했어야 할 정부가 옛날과 똑같이 아무런 대비없이 상대국의 요구 조건을 다 들어주고 말았다.
정부는 쌀 수출국과 밀실 협상을 통하여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쌀 수입개방은 WTO와의 약속이므로 어쩔 수 없다”며 국민들을 속여왔고 국회마저도 정부의 잘못된 협상안을 비준해 주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협상안을 어기면 무역보복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는데 과연 사실인가?
우선, 2004년 한국에 불리한 내용의 협상안을 거부하면서 시간을 끌어나갔어야 했다. 불리한 협상이라며 의도적으로 시간끌기를 했다고 해서 무역보복을 할 수 있다는 대목은 WTO의 어떤 조항에도 없다. 또 협상을 타결했다 하더라도 곧바로 의무 이행을 할 필요도 없다. 상대국이 함부로 WTO에 제소할 수도 없으며 WTO의 재판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보복조치를 취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미국의 경우 자국에 불리한 협상안은 국회에서 비준을 하지 않은 것이 15건에 이르며 비준을 하더라도 대략 3년~10년의 시간을 끌면서 비준처리를 한다. 최대한 자국의 국민과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반면 한국은 당장 하지 않아도 될 추곡수매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쌀값을 폭락시켰고 쌀 수입개방조치도 아무런 대비 없이 국회비준을 서두르고 있다.
농민들은 10월 18일부터 농민파업을 선언하고 전국의 읍면사무소에 볏가마 야적시위를 벌이고 있다. 11월과 12월의 세계무역협상을 무산시키기 위해 부산과 홍콩에서 최대의 농민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하루속히 농민들의 삶을 보살피고 불행한 사태를 막아야 할 것이다.
허충회 전 당진군농민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