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사는 곳에 술이 없었다면? 말할 수 없이 삭막했을 것이다. 흉금없이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술자리이고 언제라도 부르면 달려오는 술친구가 있다면 그는 한평생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인간사 화통하게 해주는 술, 동동주를 잘 빚는다고 소문난 여인이 있다. 우강면 대포리 김영혜(58)씨다.
김씨가 빚은 동동주는 맛이 무척 진해 입안이 텁텁할 정도다. 색깔도 진한 밤색에 가깝다. 사람들은 그의 술맛을 ‘감칠맛 있다’거나 ‘먹어도 먹어도 자꾸 당긴다’고 표현한다. 다음날 골이 아프거나 속이 쓰리거나 하는 후유증도 없다. 오로지 쌀과 누룩만을 쓰기 때문이다. 문제라면 그저 ‘취한다는 것’뿐, 손이 큰 만큼 마음도 넉넉해 취객을 흉 볼 그도 아니기에 사람들은 술이 생각나면 그의 집을 내 집인양 찾아든다.
남편(우강농협 지승복 조합장)이 지역유지다보니 손님이 끊일 날이 없는데다 김씨의 술맛에 ‘중독된’사람들도 여럿이라 일년 열두달 김씨네 술독은 비어있는 날이 없다. 덕분에 한해 식량으로 먹는 쌀보다 동동주를 빚는데 들어가는 쌀이 더 많을 정도다. 김씨가 어림한 동동주용 쌀소비량은 한해 20가마. 큰딸을 여읠땐 한번에 13가마를 빚은 적도 있다고 한다. 술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다보니 그렇게 많이 빚어도 남아나질 않는다. 운전 때문에 술을 못마신 하객들은 너나 할 것없이 술을 싸들고 갔다는 것이다.
각종 행사장에서나 집안에 대소사가 있는 사람들이 김씨에게 술을 담가달라는 요청을 할 때가 많다. 술 인심 후한 김씨는 이를 마다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돈을 받고 파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빚은 술을 좋아해주고 탈 없이 마셔주면 그것으로 족할 뿐이다.
시집 오기 전 친정어머니께 어깨너머로 동동주 빚는 법을 배웠다는 김씨는 손끝이 야무져 동동주 뿐만이 아니라 ‘뭐든지 잘하는 아낙네’로 통한다. 동동주를 직접 빚기 시작한 지는 25년 정도 됐다. 소들강문 한복판에 살고 있어 흔한 게 쌀이었고 남편이 술을 좋아하다보니 집에서 담가 먹는 것이 여러모로 나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동동주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누룩”이라고 말한다. 누룩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동동주의 성패가 갈린다는 것. 누룩은 밀로 만드는데 장마철이 지난 직후에 밀과 쑥을 켜켜이 쌓아 누룩장을 만들고 가을에 밤이슬을 맞히면서 열흘을 말려야 비로소 제대로 된 누룩이 만들어진다. 이 누룩가루를 술밥과 버무려 술통에 넣고 물을 채운 뒤 40일간을 발효시킨 다음 걸러내면 비로소 맑은 동동주가 탄생한다. 김씨가 빚은 동동주는 서서히, 충분히 발효를 시킨 것이기에 굳이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더라도 술맛이 변하질 않아 일년내내 두고 마실수가 있다고 한다.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런 술이 나올 수가 없다. 쌀 한말로 빚어낼 수 있는 동동주는 겨우 20리터. 타산을 맞출래야 맞출수가 없다.
술맛은 정성이라 했던가. 김씨의 동동주는 말그대로 정성과 손맛으로 만들어지는 진짜 동동주다.
한때 우강 일대에서 빚어지는 동동주를 짚가리술이라고 했다. 가용주로 술을 빚는 것조차 엄하게 금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세무서에서 조사 나올 때 들키지 않으려고 짚더미 속에 술을 감춰뒀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었다는 것. 김씨도 물론 그 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한번도 들킨적이 없었지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무섭다’는 김씨는 여기저기서 술 담가달라고 하는 판에 자주 술을 담그다보니 ‘간보다가 술 배웠다’고 웃으며 말한다. 언제까지 술을 빚을거냐는 물음에 김씨는“장담 못한다”며 “힘닿을 때까지 빚겠다”고 한다.
김씨 집 주변으론 지금 술 익는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엊그제 쌀 다섯말로 술을 빚었기 때문이다. 한달 후 그의 집을 찾아가면 넉넉한 인심과 함께 햅쌀로 빚은 원조 동동주를 맛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