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향전에 등장하는 중세시대의 인물. 이몽룡. 그가 부패한 지배세력에게 보낸 시를 다시 꺼내 읽는다.
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
燭淚落時 民淚落
歌聲高處 怨聲高
가히 명문이다. 요즘말로 옮겨보자.
“금 술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민중의 피요/ 화려한 쟁반에 담긴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 호사한 촛대에서 흐르는 촛물은 민중의 눈물이요/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하는 소리 높다.”
이몽룡 앞에 부끄러운 까닭은 그의 붓을 따라가지 못해서다. 언론인으로 살아오면서, 이몽룡과 같은 통렬한 질타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다. 줄을 이어 죽어가는 농민과 노동자 앞에 참담한 까닭은.
“죽여라 죽이거라”... 여성농민의 타들어가는 유서
“죽여라 죽여 죽이거라. 나는 간다.”
농약을 들이켜 온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 써내려 간 여성 농민의 유서다. 경북 성주의 고 오추옥. 고인이 5년 전 귀농했을 때, 얼마나 꿈이 소박했겠는가. 하지만 그 소탈한 꿈의 귀결은 자살이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문경식 의장은 다음과 같이 애도했다. “골프장에서 양주 마시며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매국노들의 세상이 아니라, 피땀흘려 일하는 농민·노동자·민중이 제 대접받는 세상, 농민 해방의 세상을 위해 죽지않고 살아서 끝까지 쉼없이 투쟁해 나갈 것이다. 열사여, 부디 다시 태어난다면 농민이 주인되고, 생산의 기쁨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다시 부활하소서.”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참극이 벌어졌다. 40대 초반의 농부 전용철이 끝내 숨졌다. 그 또한 노동자로 일하다가 귀농했다. 부자신문들이 ‘마녀 사냥’한 전국농민대회에서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하지만 경찰은 고인이 대회를 마친 뒤 고향 집 앞에서 쓰러졌다고 강변해왔다. 뒤늦게 아스팔트에서 쓰러진 고인의 사진이 나오자 마지못해 인정했다.
이미 때늦은 ‘인정’에도 반성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되레 고인이 술을 마시고 쓰러졌거나 농민들끼리 밀리면서 치어 넘어졌을 수 있다고 언죽번죽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고인이 벗에게 남긴 말은 끔찍하다.
“전경들에게 맞았더니 별이 핑핑 돌더라.”
얼마나 아팠을까. 결국 폭행을 당한 채 끝내 맑은 눈을 감은 농부는.
별이 핑핑 돌도록 맞아 끝내 죽음을 맞은 농부.
그러나 보라. 이 땅의 부자신문과 정치판을. 부자신문들은 농민들을 상대로 가소로운 ‘훈계’에 바쁘다. 심지어 색깔공세도 서슴지 않는다.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11월 29일자)은 “요즘 남한 땅에서 들리는 아스팔트 죽봉 혁명군들의 고함소리”를 비난하며 단언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는 세력은 일차적으로는 삼류 ‘좌파 민족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다.”
과연 저 광기의 칼럼은 류근일만의 논리일까. 농민의 절규에 침묵하는 대다수 언론귀족들도 그 연장선에 있지 않은가.
정당들은 또 어떤가. 정읍 출신의 국회의장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보라.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해결할 수 있는가. 단연 아니다. 국회에 9석 궞柳じ?2석인 지역구는 사법부에 1석을 빼앗겼다?뿐인 민주노동당이 다수당이 되기엔 아직 요원하다.
비단 농민만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끝없이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대다수 정치인들은, 언론귀족들은, 저마다 금준미주와 옥반가효를 즐기고 있다.
저들에게 일찌감치 말해줘야 했다. 그대들이 마시는 양주는 민중의 피임을. 그대들이 먹는 기름진 안주는 민중의 살임을. 이몽룡 앞에 더없이 부끄러운 까닭이다. 붓을 꺾고 싶은 오늘이다.
2005. 11. 29. 오마이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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