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했던 바다, 안섬마을은 지금

11월 어느 일요일 오후에 찾아간 송악면 고대리 안섬마을(내도)은 무척 고요했다.

서울 결혼식장에 모두들 가 마을에 남아있는 주민이 얼마 없다고 김성혁 이장이 일러준다. 지금은 쓸모가 없어져 개인에게 세를 준 마을공동 수산물직판장 앞에서 어르신 서너분이 모여 앉아 늦가을 햇볕을 쬐고 있다.

횟집 몇군데와 다방, 민박집 등이 포구를 향해 내리막 경사가 진 길옆에 나란히 자릴 잡고 있다. 한보가 부도 난 후 좀체로 장사가 되질 않는다는 이곳 상가는 겉으로 보기에도 썰렁했다. 한보가 돌아갈 때에는 허름한 포장마차도 하룻 저녁 40만원 벌이는 했다는 이곳, 그 포장마차도 지금은 먼지만 쓴 채 문이 닫혀 있다.

안섬마을은 양옆으로 한보철강과 동부제강(고대공단)이 들어서 있다. 모두 안섬주민들이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던 바다를 메워 조성됐다.

그보다 앞서 지척인 경기도 평택에 화력발전소가 생기면서 내도 앞바다에는 집채만한 화물선들이 오가는 뱃길이 만들어졌다. 그 뱃길 안에는 그물을 칠 수가 없고 조업을 할 수도 없다.

“내도는 공유수면이 적어 아산국가공단 개발로 보상받은 이중 제일 많은 이가 7천5백만원이었어. 그 돈으로는 당진읍내에 나가 14평짜리 가게방 하나 얻으면 물건 들여놀 돈이 없는 액수지.”

당시에 어촌계장을 보았다는 김용부 어르신의 설명이다. 어업보상이 생계를 보장해주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과거엔 삼치, 민어, 조기, 갈치, 새우젓, 육젓, 추젓 등등 안나는게 없어 도회지로 공부하러 나간 자식 휴학 한번 안시켰다는 안섬주민들은 서해안 개발 바람에 어장을 모두 내어주고 지금은 각양각색으로 살고 있다.

어업인구 여섯집 불과

일당 5만원 한보일도 끊기고...

이곳 주민들 중 지금도 어업을 하는 이는 여섯가구에 불과하다.

바다에 인위적인 힘이 가해지면서 갯벌은 자갈밭으로 변했고 바다도 더이상 어장의 기능을 상실했다. 흔하던 민어, 삼치 등은 찾아 볼 수가 없게 됐다. 지금은 배 타고 바다에 나가 봐야 하루 10만원 벌이. 기름값, 인건비 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한다.

폐항이 된 후 주민들은 인근 한보에 많이 다녔다. 일당이 최하 5만원은 됐으니 바다일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림은 꾸려 나갔다. 그러나 한보 일도 건설중일 때 잠시 뿐이었다. 대부분 잡역부였던 주민들은 공장이 완공되자 나이 많은 이들부터 하나 둘 해고되고 부도가 난 후에는 모두 실업자가 됐다.

보상금 갖고 외지로 떠났던 사람들도 새로운 환경·직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다단계판매 일을 했다가 보상받은 돈만 날리고 빈손으로 다시 온 사람도 몇 있다고 한다.

대대로 바다가 생계터전이었기에 농사 지을 땅도 변변치 않아 이 마을에서 남의 논까지 빌려 농사 짓는 이중 3만평을 경작하는게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송산 방조제(송산 동곡~내도를 이은 간척사업)가 지어지면서 당연히 자신들 몫으로 떨어질 줄 알았던 농지는 전국을 대상으로 한 공개입찰로 매각되는 바람에 내도 주민들에겐 차례가 가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이곳에서 그래도 형편이 괜찮은 주민들은 동부제강 부두에 하역작업을 나가는 이들이라고 한다. 모두 25명. 배가 들어올 때만 부두에 나가지만 월 2백만원 벌이는 하고 있다.

하지만 그외 주민들은 특별한 일거리가 없어 일당 22,000원의 공공근로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여름엔 송악면 공공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내도 사람들이었다고 전하는 김성혁 이장은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마을일을 보면서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는 김 이장.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자갈밭으로 변한 마을앞 공유수면을 매립해 상가를 조성하는 안이었다. 한보와 동부가 제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장사는 괜찮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아산항이 건설되면서 뱃길을 만들기 위해 파내어질 준설토로 내도 앞바다를 매립해 줄 것을 각계에 진정한 상태다. 지금 안섬주민들은 생계터전을 빼앗은 매립과 개발을 원망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자신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바다를 메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갯벌은 농지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옛날이 그리운 교로리 사람들

석문면 교로3리는 당진화력발전소가 들어선 마을이다. 그에 앞서 대호방조제 공사로 바다가 막혀 끝도 없이 펼쳐졌던 갯벌은 자취를 감추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하고도 몇년이 더 지났다지만 이 마을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옛날엔 요 뒷쪽이 모두 바다였고 뻘이었지. 근사했어. 숭어, 민어, 꽃게 같은게 지천으로 널려 열살난 애들도 잔뜩 잡아오곤 했어. 여자들도 하루 네시간 일하면 6만원은 거뜬히 벌었지.”

19일, 경노당에서 만난 이 마을 신현진 어르신의 얘기다.

그러나 황금갯벌이 대호방조제 공사로 사라졌지만 이 마을에서 보상을 받은 이는 어업면허를 갖고 있던 2~3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실제로 대호간척사업은 가장 넓은 공유수면을 매립하는 공사였지만 어업보상은 이후 진행된 각종 개발사업과 비교해 가장 적었다. (표2)

논을 만들어 9천평씩 주겠다던 농어촌진흥공사의 약속만 믿고 긴긴 간척공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생활고에 시달리길 10여년. 그러나 9천평 분양약속은 온데간데 없이 어민들에게 주어진 농지는 세대당 2,400평 뿐이었다.

경노당에 모여있던 이 마을 어르신들은 ‘농진한테 속았다’고 이구동성이다.

세대당 2,400평의 농지는 갯벌에서 얻었던 수익에 비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 규모로 농사를 지어봐야 자재값, 기계값 빼고 나면 얼마 남는 게 없다고 한다. 게다가 농지도 그냥 받은 게 아니어서 평당 1만원대의 분양가에 대한 이자를 물어야 하고 내후년부터는 농지값도 갚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간척농지를 분양받은 주민중 상당수가 이를 외지인에 팔아 넘기고 있다고 한다.

“교로3리에서 지금 땅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만큼 어렵다는 증거다.”

이 마을 전재욱씨의 얘기다.

“간척지는 거의 경기도 사람들이 사고 있다. 2,400평 갖고는 죽게 농사지어 보았자 남는 게 없고 2001년도부터는 땅값을 갚아나가야 해 그걸 갚을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은 땅을 파는 수밖에 없다.”

초락도에서 만난 한 주민의 말이다.

간척농지 매매는 분양 이전 일시경작기간 중에도 있었던 일이다. 국가소유의 땅은 전매행위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나 보상도 받지 못하고 어장을 잃었던 영세어민들이 생계가 막막해지자 일시 경작중이던 간척지를 권리금을 받고 팔아 넘기곤 했다. “대호간척지의 주인은 돈 많은 외지인들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실치 주산지 장고항의 오늘

장고항 용무치에서 사는 백은기(39세)씨는 어려서부터 바다일만 해온 ‘오리지날’ 어민이다. 소난지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만 마치고 용무치로 나와 어업을 생업으로 삼아 살아왔다.

용무치는 예로부터 유명한 실치 외에도 중하(새우), 전어가 많이 나왔다. 그러던 것이 주변에 방조제 공사가 잇따라 이뤄지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물고기들의 산란지였던 ‘만’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진화력이 바다를 매립해 들어서면서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들자 백씨도 바다 일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워 5년전 횟집을 차렸다. 처음 얼마간은 그런대로 장사가 되었다. 봄 실치철은 대목이었고 평소에도 꾸준히 손님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IMF가 터지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바다에서라도 나오는 게 있으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획량도 어획량이려니와 조업자체가 여간 어려워진게 아니다. 실치어선에 대한 폐업보상이 이미 이뤄져 실치를 잡는 것도 불법이 되었고, 해역이 좁아 어쩌다 경기도쪽으로 넘어가 조업을 하다 걸리면 몇백만원 벌금이 떨어진다.

지난 봄 실치축제를 못한 것도 실치잡이가 이제 이곳에선 불법행위였기 때문이다. 축제를 할만큼 양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명색이 실치 주산지 장고항인데 다른 지역에서 사들여와서까지 축제를 한다는 건 이곳 주민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듯 싶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지만,

석문간척지 희망의 땅 될수있을까?

송산면 가곡리 주민들은 갈대로 무성한 석문간척지를 볼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석문면 장고항리와 송산 가곡리를 연결하는 석문방조제 공사가 시작된지 12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미완인 채로, 우량 농지가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96년 농어촌촉진법이 농어촌정비법으로 바뀌면서 대단위 간척사업으로 생겨난 농지의 분양순위가 뒤바뀌어 이곳 주민들은 말 그대로 폭발 직전이다. 방조제 공사가 시작될 때에는 간척사업으로 생겨난 농지의 분양대상 1순위는 피해어민들이었다. 그 기대 하나로 한창 잘 나가던 해태양식도 포기하고 간척사업을 순순히 받아들였건만 이른바 규모화 영농 정책에 따라 법이 바뀌어 분양 1순위가 전업농, 영농법인으로 올라서고 어민들은 5순위로 밀려난 것이다.

게다가 분양방식도 경쟁입찰로 바뀌어 가난한 어민들은 설사 입찰자격이 주어진다 해도 농지를 차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입찰에 부쳐질 경우 평당 3만원대를 호가할 것이고 1구간(6,000평) 낙찰받기 위해선 1억8천만원이 있어야 한다.

“잘 살게 해준다며 바다를 막더니 이젠 법을 바꿔 어장내준 어민들은 나몰라라 하고 있다”며 이곳 주민들은 하나같이 원성이다.

가곡리 주민들은 바다가 막혔지만 아직도 절반가량은 어업에 종사한다. 농사채가 없는 이들은 건축현장에 막노동일을 다니고 있다. 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하루빨리 간척공사가 끝나 자신들의 생계터전이었던 과거의 갯벌에 다시 들어가 농사를 짓는 것이다.

개발로 막히거나 메워진 당진의 바다, 그 풍요했던 과거의 모습은 이제 바닷가 주민들의 기억에서마저 희미해져 간다.

어민들에게 선택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던 간척사업.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친 낯선 구호 서해안 개발.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안겨주었던 변화의 시대가 한 페이지를 넘기고 있지만 그들이 새천년대에 희망을 걸어보기엔 현실이 너무도 버거워 보였다.

그러나 칼날같은 갯바람과 싸우며 자식들 키워낸 강인함으로 그들은 저절로는 오지 않는 희망을 조금씩 일궈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어지겄지...”

안섬마을 어느 주민이 한숨과 함께 내뱉은 이 한마디는 체념이라기 보다 의지의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