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48세)씨는 요즈음 낙지잡이와 굴따는 일을 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바닷물 빠진 서너시간 동안 꼬박 갯바닥을 뒤져 보지만 손에 잡히는 낙지는 10마리 남짓. 2만원 벌이다. 낙지를 담을 그릇이 모자라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왔던 때도 있었는데...

박하지, 소라도 지천이었던 시절. 준치, 민어, 삼치, 숭어 등등 어류도 풍성했던 아산만은 70년대 삽교호·아산호방조제 공사가 잇따라 진행되면서 거짓말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물고기들의 훌륭한 산란지였던 아산만이 가로 막히면서 물살이 세어져 더이상 산란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나름대로 분석했다. 게다가 90년대 들어서 마을왼쪽으로 부곡공단이 30여만평의 바다를 매립해 들어섰고, 웅장한 서해대교도 세워지고 있다

서해안 개발의 이름으로 진행된 10년간의 온갖 인위적인 변화는 1차 산업을 생업으로 삼아온 이들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통행로가 자고 나면 어디론가 없어져 황당했던 때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김씨의 생계터전인 복운리 앞바다는 이미 지난 80년대 말 아산항 개발이 고시되면서 어장으로서의 이름을 상실했다.

보상이라곤 마을 공동양식장의 폐쇄에 따라 나온 게 전부였다고 한다. 김씨는 “아마 마을길 포장에 쓰여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객지에 나가 떠돌다가 73년도에 고향에 돌아온 김씨는 그때부터 어업을 해왔다. 그때만 해도 수산물값이 없을 때였지만 워낙 잡히는 양이 많아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셋이서 바다에 나가면 볏가마니로 2가마씩 굴을 따왔다”고 과거를 되돌아 보는 김씨의 얼굴은 금새 허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젠 이 바다도 1년 가면 끝날 것 같다”는 것이다.

바다와 상관없는 다른 일을 계획해 보기에는 오십줄을 바라보는 나이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농사채라고 해봐야 가족들 식량거리도 안나올 정도로 빈약하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안정되지 못한 젊은 날을 보냈기 때문일까. 그는 아직 총각딱지를 떼지 못했다.

6남매의 장남으로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그는 “어디 자리가 있으면 조그만 횟집이라도 차리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김씨 집앞에 바짝 들어서있는 서해안고속도로 인터체인지는 하루가 다르게 제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그럴수록 바다로 나가는 길은 점점 멀어진다. 이젠 길조차도 끊길 판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김씨는 이제 정말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