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20일 오전 10시 35분.
당진 구터미널에 맷돌포행 버스가 정차한다. 차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승객들이 하나 둘 차에 올라탄다.
“안녕하세요”
차분하고 자상한 음성의 인사말이 운전석에서 나온다. 한번만 하는 인사가 아니라 승객 한명한명마다 인사가 건네지자 이내 할머니 승객들로부터 칭찬이 나온다.
“여기 기사님 인사도 잘하셔..”
“이, 일등 기사여.”
차문이 닫히고 버스는 10시 40분에 정확히 출발한다. 출발직전 다시 운전석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오늘도 저희 당진여객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차량은 11시 기지시, 11시 20분 신평입니다. 자 출발하겠습니다.”
열차 여행때나 접하던 멘트를 시내버스 안에서 들으니 낯설면서도 나들이 떠나는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
이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는 운전경력 16년차인 이종하씨다. 당진여객 사무실에는 일주일에 몇 통씩 그의 친절한 서비스에 감동을 받은 승객들로부터 칭찬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운전대 돌리기도 바쁜 와중에 안내방송까지 자청해서 하고 있다. 그것도 커다란 손 마이크를 들었다 놓았다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다음 행선지를 알리고 커브길 앞에선 사고예방 멘트까지 빠짐없이 던진다. 승하차 고객들에 대한 인사는 기본이다.
“이번 내리실 곳은 신성아파트입니다. 꼬마손님 안녕히 가세요. 내리실 때 계단조심하세요”
“원당 3거리 우회전하겠습니다. 꼭 잡으십시오.”
천원이든 이천원이든 내가 지불한 돈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고객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이씨가 운행하는 3호차의 승객들은 그래서 이씨의 인사에 환한 얼굴로 답한다.
“고맙습니다”, “기사님, 서비스 만점입니다. 행복하세요.”
버스는 당진읍내를 벗어나 기지시를 거쳐 신평 거산리에 도착했다. 할머니 10여분과 학생이 승차하자 자리가 꽉 찼다. 신평시장을 향해 출발한 이씨는 중간에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할머니 한분을 내려주었다. 병원에 가시는 할머니였는데 정류장에서 병원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다른 기사님은 여기서 안내려주는디..” “그리기, 내려달라구 사정해두 안돼든디..”
버스안 할머니들이 입을 모으기 시작한다.
“저는 당진여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민들 편하라고 있는 기사입니다. 걷기 어려우신 분이니 그 정도 편의는 봐 드려야지요.”
커브길을 돌 때마다 “꼭 잡으시라”는 이씨의 안내 멘트가 잇따르자 자리에 앉아있던 할머니 한분이 되묻는다.
“기사님, 뭘 잡으라는 거유?”
“손잡이를 꼭 잡으라는 말씀입니다. 남의손 잡지 마시구요, 넋놓고 계시다가 앞으로 몸이 쏠리면 가슴을 다치실 수도 있으니까요..”
이씨의 따뜻한 마음씀씀이에 호탕해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큰 소리로 외친다
“그 기사, 싹있네..”
버스안은 웃음바다가 된다.
“아이구 할머니, 같은 말씀을 하셔도 이쁘게 하셔야지 싹있네가 뭐래유?, 이번 정차할 곳은 ....에이, 할머니 말씀 듣다가 잊어버렸잖유.”
또 한번 웃음이 터진다.
도성리 입구로 접어들자 승객은 너댓명만 남았다.
잃어버린 틀니 이야기며, 같은 직업을 가진 사위 이야기, 등등 어느새 3호차는 할머니 승객들과 버스 기사 이씨의 사랑방이 되었다. 다음에 또 타시라는 이씨의 작별인사를 들으며 할머니들은 한정리 회관 앞에서 모두 내린다.
창밖엔 어느새 바다풍경이 펼쳐진다. 맷돌포를 지나 버스는 종점인 음섬으로 향한다.
“과거엔 미처 태우지 못할 정도로 승객이 많았는데 요즘은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손님들을 더 끌어들일수 있을까 고민하다 서비스 차원에서 안내방송을 시작한거죠,”
물론 처음엔 힘들었다. 유난 떠는 것 아니냐는 질시도 있었고 마이크도 없이 육성으로 하니 목만 아플 뿐 손님들은 잘 듣지도 못했다.
“방송을 하고나서 달라진 것이라면 우선 저에게 좋다는 겁니다. 친절하게 인사하면 손님들도 기분이 좋아 칭찬해 주시니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더 생기죠. 또 졸음운전을 하지 않게 됩니다.”
처음엔 그의 인사에 대꾸를 않는 고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것이 서너 개월이 지나자 승객들 스스로가 대답 안하는 승객들에게 ‘기사님이 인사하는데 왜 대꾸 않느냐’고 말해주더란다.
손님에게 막 대하고 성질나면 급브레이크 밟고... 이씨의 표현대로 저개발 도상국가의 모습으론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씨는 당진이 곧 항만도시가 될 것이기에 4개국 언어는 할 줄 알아야 한다며 나름대로 그때를 대비하고는 있지만 혼자서는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좀더 많은 기사들이 자신과 함께 친절 프로그램에 동참하길 바라고 있다
버스안 사람들
“우리야 시간 많으니
자동차 필요없지”
종점인 음섬까지는 김영진 할아버지(78) 혼자만이 남았다. 김할아버지는 전라도가 고향으로 이곳과는 전혀 연고가 없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퇴임한 뒤 공기좋은 곳을 찾아 매산리 음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당뇨를 심하게 앓고 있는 할머니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들이 마을에 많은것도 김할아버지가 이곳을 노후를 보낼 보금자리로 선택한 배경.
“은행에 볼일 있어서 신평 다녀옵니다. 여기서 살기 불편한 것은 없어요. 젊은 사람들이야 이런데서 살려면 자동차가 필수겠지만 우리야 시간이 많으니까...”
“문구사러 당진 나가요”
봄 방학중인 새봄이, 미현이, 윤희, 다현이는 학용품을 사러 당진을 간다. 곧 새학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다른 기사아저씨는 떠든다고 뭐라고 하고 문열어놓으면 뭐라고 하고 혼내기만 하시는데 이 아저씨는 너무 친절하세요, 어색할 정도로요..”
따뜻한 봄 햇살이 스며드는 버스 맨 뒷자리는 항상 이들처럼 발랄한 여학생들의 차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