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비의 30%를 복지기금으로, 근로복지회관 건립 군의원 3선 후 도의원 도전 제4대 군의회에서 4년 동안 의장직을 맡아왔던 김천환 의장이 도의원 출마를 위한 공식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충남도의회 제2선거구에 후보로 나선 것. 군의원 3선 경력의 김천환 후보는 이미 지난해부터 도의원 선거 출마가 점쳐졌으며 일부에서는 군수 후보 출마 가능성까지 제기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한때 입당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김천환 후보는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김천환 의장은 “군의원 12년의 경력으로 도의회에 가서도 좋은 활동을 펼치겠다”며 “의정비의 30%를 복지기금으로 내놓고 근로노동자 복지회관을 건립하겠다”고 말했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30대에 정치 입문 김천환 후보는 송악면 중흥리에서 태어나 송악초, 신평중을 졸업했다.

김천환 후보는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진학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며 “너무 어려웠던 당시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지금은 중앙대학교 최고지도자과정까지 마쳤다”고 말했다. 김천환 후보는 정치에 입문한 지 어느새 38년이 됐다고 한다. 김천환 후보는 1971년 당시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의 연설원을 맡은 것이 정치의 시작었다고 말했다.

이후 현 신평중고 이사장인 유제연 국회의원의 선거연설원으로 일했고 지난 1997년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의 연설원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한 송영진 국회의원과 같이 일하며 연설원을 하기도 했다. 재건중학교 설립과 운영에 주도적 역할 김천환 후보는 “배우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배우지 못하는 후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며 당시 중흥리에서 ‘재건중학교’의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운영도 했다.

그 때가 1971년도. 그러나 5회 졸업생까지 배출했던 재건중학교는 정부시책이 ‘1개 면에 1개 중학교’로 바뀌면서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김천환 후보는 “이때가 주변을 위한 봉사활동에 가장 힘을 쏟은 시기였다”고 말했다.

1986부터 1991년까지 김천환 후보는 부동산 업계에 투신했다. 김 후보는 91년도에 두 번째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송악면 군의원에 당선되면서 부동산업계에 손을 뗐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12년 동안 군의원으로, 특히 4대 군의원 재직중에는 전반기와 후반기에 의장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행정과 의회는 정당 떠나 협력할 수 있어야” 김천환 후보는 자신의 정치철학에 대해 “군민들을 위한 옳은 정책이 나온다면 정당과 이념을 떠나 과감히 그 정책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말에 대해 “군수나 지방의회 의원들을 정치꾼으로 몰아가지 말라”며 “만약 열린우리당이 진정 군민들을 위한 정책과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정당을 떠나 그들과 함께 협력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칫하면 ‘당을 이리저리 옮겨도 상관없다’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는 말.

이에 대해 김천환 후보는 “군수와 지방의회 의원들은 모두 군민들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에게는 정당과 이념을 떠나 함께 협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걸어온길 1944년 송악면 도원리 출생(만61세) 송악초·신평중 졸업 1973년 김대중 대통령 선거연설원 역임 1974년 상록재건중학교 설립운영 1991년 군의회 제1대, 제3대, 제4대 의원 역임 4대 군의회 전·후반기 의장직 역임 당진항지정 범군민추진위 상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