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16세)군을 만난건 지난 13일 넓은 합덕평야에 어둠이 내려 앉은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였다.

합덕읍 상흑마을, 점점이 박혀있는 불빛을 좇아 간신히 진호네 집을 찾았다. 노란 백열등 불빛이 새어나오던 진호네 집에는 대문이 없었다. 방 두칸 합쳐봐야 열평 남짓한 작고 허름한 집에서 진호는 칠순이 넘으신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서마지기 논과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월 20만원이 진호와 할머니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수입이다. 단촐한 살림이어서 큰 돈 들일데도 없지만 올해는 기름값이 크게 올라 겨울 날 일이 할머니는 걱정이다. 그래서 연료비를 아끼려고 진호방에는 불을 넣지 않고 있다.

“괜찮아요. 겨울이 아니어도 할머니와 꼭 함께 자는 걸요.”

혼자있기 좋아 할 사춘기 소년이길래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진호가 답한 말이다. 실제로 진호는 지금도 할머니 곁을 떠나서는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쩌다 서울에 사는 고모집에 가도 하루를 못넘기고 집에 돌아온다. 어려서부터 부모님보다 할머니 품에서 지낸 날이 훨씬 많았기 때문인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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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는 흔히 말하는 소년가장이다.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을 견디지 못하고 진호가 아주 어렸을 때 집을 나갔고, 돈 벌겠다며 객지에 나가 살던 아버지는 술로 망가진 몸을 이끌고 다시 고향에 내려와 살다가 결국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이었지만 진호에게선 그러나 그늘진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진호는 매우 낙천적이고 명랑한 소년이었다.

그룹 HOT의 열성팬이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벌써 3개나 갖고 있을 만큼 컴퓨터를 잘 다룬다.

학교생활도 모범적이다. 진호는 서야고등학교 1학년 2반 반장이다. 성적은 드러내놓고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는 수준. 쉽게 화를 내지 않는 무던한 성격인데다 남을 잘 웃겨 따르는 친구들도 많다.

초등학교 때부터 붙어 살다시피한 국태. 컴퓨터 스승인 정환이, 진호처럼 남을 잘 웃기는 선민이, 전교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해 진호에게 늘 자극(?)을 주는 짝궁 충영이, 진호와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친구들은 어쩌다 노래방 같은델 갈 때면 꼭 진호를 끼워준다. 진호가 분위기를 잘 맞춰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다 진호는 관악부에서 효과음을 내는 심벌즈를 맡고 있어 흥을 돋워주는 실력(?)이 뛰어나다. 관객들이 지루해 할 때 쯤이면 우스꽝스러운 제스쳐와 함께 ‘챙’하는 소리를 내어주는 심벌즈, 양념같은 역할을 해주는 이 악기가 자신의 성격과 닮은 것 같아 진호는 관악부 활동이 퍽 즐겁다고 한다.

얼마전에는 어느 여학생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기도 했다는 진호. “때가 아닌 것 같아 거절했지만 기분은 좋았다”며 능청스럽게 웃는다.

진호 말대로 지금 진호는 물질적으로 좀 부족한 것 말고는 부족한 게 없어 보였다. 용돈이 넉넉지 않다 보니 ‘빈대’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지금 진호는 그 별명에 자존심 상해하거나 의기소침해 하지도 않는다.

“처음엔 좀 기분 나빴어요. 근데 친구들도 제 형편 다 알고 나쁜 뜻에서 하는 말도 아니라는 걸 저도 알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요.”

진호가 물질말고는 부족한 게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나이답지 않게 여유있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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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호의 가슴 한구석엔 앙금처럼 깔려있는 무언가가 있다.

진호에게 엄마에 대한 기억은 늘 아픔과 낯섦으로 남아있다. 네살 때 어느 날인가, 아마도 아버지와 이혼을 했던 날이 아닌가 싶다. 무엇에 화가 났는지 엄마는 진호가 먹고 있던 강냉이 봉지를 빼앗아 내팽개쳤다. 땅 바닥에 흩어져버린 강냉이를 보고 엉엉 울었던 일이 엄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날 이후 진호엄마는 다시는 집에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진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는 학교로 진호를 찾아왔다. 10여년만의 만남이었다. 엄마는 그 후로 1년에 한두번씩 학교로 진호를 찾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진호에게 옷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었다. 그러나 진호의 입에서는 좀처럼 엄마란 말이 나오질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냥 나오질 않았어요. 이 분이 진짜 우리엄마인가 낯설기만 했어요. 엄마를 만나는 게 아버지에겐 미안하기도 했구요.”

그런 엄마도 재작년 이후론 찾아오지 않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물론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네가 엄마라고 부르지 않아서 오지 않는 것 같으니 다음에 오면 꼭 엄마라 부르라”고 타이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되신 것도 엄마 때문이예요. 엄마가 집을 나가 마음 잡지 못하고 술만 계속 드시다 병에 걸리신 거예요. 할머니마저 잘못되신다면 그땐 정말...”

다시는 엄마를 보지 않겠다는 거였다. 그리움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나이에 떠나버린 엄마, 진호에게 엄마는 너무나 큰 상처가 되어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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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엄마가 떠난 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할머니를 진호는 가장 아끼고 사랑한다.

“우리 할머니가 참 복이 없으세요. 남편, 아들, 며느리 모두 먼저 떠났잖아요.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 받으시며 편안히 여생 보내셔야 할 때인데...”

진호 할머니는 새벽 5시면 일어나 진호를 위해 아침밥을 지으신다. 그런 할머니에게 괜히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로 진호는 이미 어른이 되어있다. 하지만 진호는 안다. 찬바람 들어오는 부엌에서 새벽밥을 짓고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어느 때는 10시가 넘어 들어오는 진호를 위해 밥상 물리지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할머니지만 진호가 없으면 당장 적적해 못사실 거라는 것을.

그래서 진호는 대전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던 마음을 접고 합덕에 있는 인문계 학교를 선택했고, 대학엘 가더라도 할머니곁에서 다닐 수 있는 곳을 가겠다고 한다. 진호에겐 지금 할머니의 건강만이 가장 큰 바람이자 간절한 소망이다.

“할머니에게 잘하는 색시얻고 돈도 많이 벌어 호강시켜 드릴 수 있게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정말 좋겠어요.”

하지만 진호의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는 자꾸만 쇠약해지신다. 숨이 가쁜 병이 심해져 작년부터 일도 못다니시고 방안에서만 지내신다. 진호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데 쇠약해지는 할머니를 보면 세월을 붙잡고 싶어진다.

이명자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