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의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아내와 자식도 도시에 남겨두고 홀로 낙향해 살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벌써 7년째, 그는 어머니의 세끼 식사를 꼬박 챙겨주고 대소변을 가려주며 목욕과 미용까지 도맡아 가면서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송악면 복운리에 살고 있는 김영세씨(45). 주변사람들은 그 자신보다 오히려 더 그를 안타까워 한다. 젊은 청춘을, 단란한 가족생활을 송두리째 어머니의 병구완에 바친 지난 세월을 누구에게 보상받을 것이냐면서.. 그러나 사지가 멀쩡한 자식이 있는데 어찌 다른사람에게 어머니를 맡기느냐는 그의 말엔 누구도 할말을 잃는다.
김씨의 어머니는 벌써 15년째 누워서만 살아오셨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눈동자와 입. 사지가 점점 마비되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기 시작한지는 벌써 30년이 넘었다. 아버님은 어머니가 아예 자리에 누운 지 3년째 되던 해 논일을 하시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내가 병수발 들 터이니 어머니 걱정은 하지 말라’며 내내 자식들 안심을 시켜주시던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7남매의 장남인 영세씨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인천에 나가살던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아들마저 그곳에 남겨둔 채 고향으로 내려왔다. 오로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간병인을 두자니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았고 도시생활을 불편해하는 어머니를 인천으로 모셔올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의 귀향살이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생전 농사일이라곤 해본적이 없는 그는 아버님이 물려주신 농토를 일구며 어머니를 모시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누구의 도움없이는 물한모금도 마실 수가 없다. 두 다리는 물론 두 팔,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모두 굳어 마치 냉동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진통제로 통증을 다스리고는 있지만 밤에는 통증이 심해 저절로 신음소리를 내신다. 그러면 김씨도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그렇게 날을 지새우고 아침이 밝아오면 세수를 시켜드리고 대변을 받아내며 아침밥을 지어 먹여드린다. 때 맞춰 점심을, 저녁 밥을 짓고 소변은 2시간 간격으로 누인다.
때문에 김씨는 어디가서 2시간 이상을 앉아있을 수가 없다. 최근 가장 멀리 나간 곳이 당진읍내, 인천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 됐다. 가족들과 나들이를 가본지가 언젠지... 어쩌다 남의집에 놀러가도 불안한 마음에 이삽십분만 앉아있다가 나오곤한다.
인천에서 친정식구들이 운영하는 공장에 나가는 아내 이영순씨가 주말마다 내려와 밑반찬을 만들어주고 가지만 이미 정상적인 가족생활을 포기한지 오래다.
하나뿐인 아들 대섭이의 졸업식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그, 하도 아쉬워 꽃다발 들고 방안에서 촬영한 사진이 김씨의 작은 쪽방 한쪽 벽에 걸려 있었다. 이제 장성해 곧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아들에게 김씨는 늘 미안한 마음 뿐이다. 한 어머니의 아들 노릇을 한다며 정작 자신은 한 아이의 아비노릇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은 아내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내와 아들녀석을 보면서 문득 남편의 자리, 아비의 자리가 비어있음을 느낄 때 김씨는 외롭고 가슴이 쓰리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오랜 간병생활에 김씨는 지금 지쳐가고 있다. 가장노릇도 못하고 어머니의 간병인으로 살아온 지난세월이 남긴 것은 ‘빚’뿐이라며 허허롭게 웃는 그는 한때 고통스런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 ‘강원도 깊은 산속으로 달아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이 운명인것처럼..
어머니에게서 자유로와진다면 2, 3년간 전국을 돌아다녀 보고 싶다는 김씨. 그에 앞서 아들 대성이가 대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잡으면 자신 곁으로 내려올 아내를 기다리며 어머니와 단둘이 살기엔 너무나 큰 고향집을 그는 지금도 말없이 지키고 있다.
* 김씨의 삶은 며칠전 SBS 서울방송 ‘세상에 이런일이’팀에서 촬영을 해갔다. ‘남부끄러운 일’이라며 취재를 극구 마다해왔던 김씨를 지난해 12월부터 설득해 왔던 스텝들은 결국 김씨집 앞마당에 며칠간 진을 치고 ‘농성(?)’을 벌인 끝에 가까스로 김씨의 허락을 받아냈다고 한다.. 김씨와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번주나 다음주에 방영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