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인격체와 인생관을 깨닫게 해준다

어린 시절 나는 무수한 책을 읽었다. 왜 그렇게 읽었는지 어떤 뚜렷한 이유가, 목적 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재미가 있어서 읽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냥 앞에 뭔가 있으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잠도 자지 않고 책에만 빠져 있는 나 때문에 여간 고생하시지 않은 어머니는 잠 안자고 책 읽겠다고 버티는 나를 여간 기특해하지 않았다.

부모 마음 다 그렇겠지만 조상 중에 한 분이 똑똑해서 미쳐 요절한 인물이 있었다나? 중학시절 아이큐 검사를 보면서 담당교사와 어머니께서 크게 놀라신 이후 내가 책 읽겠다면 신간은 빼놓지 않고 구입하며 적극 후원하셨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는데 나는 내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 무슨 책이 네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소설가, 철학자가 너의 인생 철학에 영향을 끼쳤는지 누군가 물으면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후 어느새부턴가 나도 책을 읽으면서 애써 그러한 부분을 찾아 노트에 열심히 적어 놓았다. 나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이 책에서는 말이지 하며 남들에게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겠지 하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무료한 날 내가 읽으면서 분명히 좋아했었던 책, 하지만 여전히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저 책에서는 무엇을 말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은 못하는 책들 중 한 권을 서재에서 꺼내 들었다.

시몬느 보봐르의 ‘계약 결혼'이었다.

한창 예민한 시기였던 10대 후반 무렵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냥 무심코 꺼내서 다시 펼쳐보았다. 책 앞표지에 수건을 두른 시몬느 보봐르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그 책을 다시 펼쳐보았지, 다른 의도나 이 책에서는 어디 써먹을 만한 구절이 없나라는 치밀한 계획아래 이루어진 것은 아닌 일종의 우연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무수히 읽었던 책들 중 한 권을 그렇게 읽어가며 나는 기쁨의 희열을 느꼈다. 탄성을 질렀다.

비록 나는 어느 한 구절 매끄럽게 암기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나, 책의 한 구절은 없을지라도 내가 왜 그렇게 책에 열광했는지 책에 쏟아 부었던 시간들이 바보같다고 여기면서도 왜 그렇게도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었던 무수한 책들은 나를 위해서 읽혀졌던 것이다. 그 시절 읽으면서 내가 삐뚤삐뚤 그어놓은 구절을 보며 그 옆에 두서 없이 긁적거려놓았던 내 문자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왜 지금의 ‘나'라는 인격체와 인생관으로 형성되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성장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책들 속에서 그곳의 인물들과 저자들과 무수히 공감하고 무수히 비판하면서 나를 만들어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현재의 ‘나'라는 제2의 탄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누구들처럼 책 속의 유명한 구절들을 외우지는 못한다. 인생에서 영향을 끼친 철학자는 누구다. 그 이유는 그들의 ...주의가 어쩌고 하면서 이야기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책 속에 투자한 시간들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죽이기 위해서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