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각종 치는 소리가 나더니 막이 드르르 열렸다. 선생이 막 뒤에서 반주하는 손풍금 소리를 따라, 공작새처럼 색색이 복색을 한 계집애들이 나와서 창가를 한다. 눈이 푹푹 쌓이는 날도 홑고쟁이를 입고 다니던 금분이가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와서 유희를 해가며 ...”

심훈이 쓴 『상록수』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채영신이 학원 건립비를 모금할 요량으로 학예회를 준비하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한창 학예발표를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예배당에 무대를 가설하고 남포불도 환하게 밝혀 놓았다. 등잔불만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남포불은 오늘날의 전깃불 못지않은 신기한 불빛이 아니던가? 일제 식민지 하에서 문맹률이 80%를 훨씬 윗도는 가난한 나라의 헐벗은 어린이들이 수줍은 얼굴로 무대에 서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 시절에 전문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이라면 가히 선각자이고 탁월한 인물이며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이었을 것이다. 민족의 수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이해를 초월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학업마저 중도포기한 두 젊은 남녀 대학생이 각각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들의 의기투합은 깊은 연정과 애정으로 발전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영신의 죽음으로 그들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젊은 패기와 아름답고 청순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랑은 농촌계몽운동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였으리라.

이 책은 일제 식민치하의 곤경은 물론이려니와 50년대 60년대의 극심한 가난을 겪어보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해마다 상록수가 판을 달리해서 출판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이미 어린 시절에 한 두 번 쯤 상록수를 읽은 경험이 있는 중장년층 이상의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더 말할 나위 없는 감동과 추억의 상념에 빠지게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소설에서 한 시대를 장식한 엄청난 선구적인 사고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영신의 헌신적인 교육활동은 종교적인 신념으로 무장되었기 때문에 그 열정이 계속될 수 있었고 박동혁의 개혁적인 사회운동은 평등에 무게를 둔 <브나로드(인민속으로) 운동>과 같은 국제적인 시대적 풍조에 확고한 사상적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상록수에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살아 숨쉬고 있고 이미 잊었을 법한 속담들이 이따금씩 눈길을 끌며 미소를 머금게 한다. 산업사회의 분주한 일상에서 잊고 지냈던 우리네 어린 시절의 가난했지만 푸근하고 넉넉했던 고향의 인심을 문득 문득 느끼게 하곤 한다.

�『상록수』는 우리가 아껴야 할 고전이기 때문에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널리 읽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민들도 관심을 갖고 읽으면서 우리 지역의 계몽문화사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해야 할 줄 안다.�

심훈은 3·1운동에 참가했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의 고향이 어디이며 그의 정치적 사상이 어떤 색깔을 띠었는지는 지금에 와서 논의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는 우리 민족사에서 중요한 한 시기를 변화와 발전으로 이끌었던 선각자요, 탁월한 문인으로 살아있을 뿐이다.

상록수를 비롯한 심훈 문학의 산실이기도 한 필경사는 뜻깊은 유적으로 가꾸어 보존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필경사는 심훈 선생이 상록수를 집필함으로써 한국 농촌계몽 소설의 지평을 연 장소이고 이 운동이 이후 10년 동안 일제 치하에서 고뇌했던 뜻있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고 비장한 심정으로 꿈을 키우게 했던 그 본거지이기 때문이다.

심훈의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직녀성』 『영원의 미소』 『불사조』 『동방의 애인』 그리고 『먼 동이 틀 때』 등의 작품들도 찾아서 보존하면 훌륭한 문학관 하나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상록수』를 당진의 브랜드로 육성하면 좋을 것이다. 훌륭한 상표를 개발하는 일은 지역문화의 창달과 함께 수준 높은 관광자원의 발굴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