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등장한다. 그는 소련과 아프카니스탄간의 전쟁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은 무자헤딘의 리더였으며 유럽의 검은 귀족의 첩보원과 미 CIA요원이었던 크리스 찰슨의 친구이기도 했다. 이것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오사마 빈 라덴의 과거 모습이다. 그러나 이젠, 자신의 지원국이었던 미국의 공습에 의해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는 단지 911 테러의 배후 용의자였을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마치 할리우드 싸구려 액션영화처럼 그와 그의 형제들을 향해 폭탄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영웅이 되어 의기양양하고 있다. 이것이 소설과 현실 속의 미국이다.

이처럼 미국은 비상식적이고 무식한 일을 처질러 놓고도 세계 열강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세계 최강국이다. 그런 국가가 한민족으로 이루어진 ‘발해독립위원회’에게 무릎을 꿇었다. 정말 황당한 얘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쾌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통쾌한 기분 앞에 미국이 무릎을 꿇는다는 황당한 설정은 가볍게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이 소설의 출발은 리얼리티와는 무관하지 않은가!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는 허구라는 것이 전제가 된다. 그리고 장르라는 타이틀을 붙였을 때는 무엇보다도 상상력이 중요시된다. 일단, 작가의 상상력을 존중하고 작가가 거미줄처럼 쳐 놓은 다양한 관계 망을 쫓다 보면, 재미라는 감정에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

소설의 출발은 영호와 상구 두 인물의 미 펜타곤 해킹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노기술과 미국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배후세력에 대한 비밀을 담고 있는 일급비밀 문건이 해킹당하자, 이를 둘러싼 세계 첩보국간에 때로는 아슬아슬하고 박진감이 넘치며 때로는 무시무시하고 엽기적인 혈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발해독립위원회>라는 비밀결사조직이 조금씩 수면위로 떠오른다. 그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군사무기를 구입하고 드디어 미국의 핵무기를 탈취해 미국의 안전망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태극기가 휘날립니다’는 스릴러인 만큼, 스토리가 쉼없이 빠르게 전개된다. 하지만 스토리 중간중간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자신의 인생역경을 압축해서 보여주며 리듬감을 타기도 한다. ‘태극기가 휘날립니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서브 플롯 내의 쫓고 쫓기는 첩보전, 납치 고문, 그리고 잔혹한 보복 과정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다. 왠지 이상하게 난 그런 잔혹한 고문장면에 끌린다.

‘태극기가 휘날립니다’와 같은 소설들이 대부분 그렇듯 민족주의적인 정서가 강하게 배어 있다. 사실 '민족주의'하면, 우선,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911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패권주의적 국제질서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민족주의가 만개하게 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때론 패권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 모습을 띄지만 결과적으로 또 다른 패권주의를 지향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두말할 나위 없이 그러한 민족주의는 위험한 발상이다.

어쩌면, 이 소설도 일련의 패권주의적, 제국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왜곡된 수세적인 반응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군사적 힘을 앞세운 군국주의와 타 민족과 타 집단에 대한 배타성을 띤 보수주의적 민족주의는 다양한 내부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배제하려는 것이 한 특징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비난받을 만하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우리는 지금 국회에서 또는 대학에서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있는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민족주의자 연맹에서 배포하는 전단지를 읽고 있는 것도 아니다. 허구의 창조물, 픽션을 읽고 있는 것이다. 첩보스릴러를 즐기면서 민족주의자라고 비난받을 만한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설사 작가가 민족주의와 보수주의를 주장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그 작가의 주장일 뿐이다. 우리가 그것에 동조할 필요성은 없다.

언제나 대중은 지식인의 예측을 빗겨 간다. 결코 지식인의 예측처럼 또는 기대처럼 -마치 자신의 예측이 정확했다는- 민족주의 정서를 내세운 특정 장르가 인기 있다고 해서 우리사회에 민족주의적 정서가 광범위하게 번져 가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